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카 (문단 편집) ==== 오스만 제국 ==== 15세기 말엽 예멘으로부터 메카에 [[커피]]가 전래되었고, 16세기 들어 보편화되었다. 다만 사람들이 모스크 부근에 모여 커피를 마시는 것을 반체제 인사들의 모임이라 여긴 메카의 시장 감찰관 카이르 베이 알 미마르는 커피 금지령을 내리기도 하였다(메카 사건, 1511년). 다만 이는 몇 주만에 직접 커피를 마셔본 술탄 깐수 알 구리가 금지령을 해제하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한편 1505년 술탄 깐수는 [[인도양]]의 [[포르투갈]] 세력에 대적하기 위해 아미르 후세인 알 쿠르디의 함대를 파견하였고, 바라카트 2세는 맘루크 함대가 제다에 머무는 동안 그들을 도와 도시에 성벽을 건설하였다. 이는 1517년 12월 포르투갈 함대의 공격에도 제다의 오스만-맘루크 수비대가 견딜 수 있었던 이유였다. 다만 같은 해 맘루크 조를 멸망시킨 오스만 조는 제다의 수비를 도운 후 도시를 직할령으로 병합하였다. 바라카트 2세는 아들 무함마드를 성지들의 열쇠 등 선물과 함께 이집트로 보내 술탄 [[셀림 1세]]에게 복속하였고 답례로 책봉되었다. 1525년 바라카트 2세의 사후 샤리프로 등극한 무함마드(아부 누마이 2세)는 1554년 아들 하산을 공동 아미르로 봉하였다. 40여 년간의 안정적인 통치 후 1567년 무함마드는 하산에게 양위하였고, 그 후 종교 생활에 치중하다가 1584년 사망하였다. 하산 역시 34년간 장기 집권하였다. 그러나 1601년 하산이 사망한 후 그의 네 아들들인 압둘 무탈립, 아부 탈리브, 이드리스, 푸하이드가 내전을 벌였다. 17세기 들어 이미 오스만 제국은 히자즈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고, 현지 유력자들인 아슈라프와 예멘의 총독들이 샤리프 선출에 관여하였다. 형제들을 모두 물리친 이드리스는 1610년부터 사촌 무흐신 이븐 후세인과 공동 집권하였는데, 1624년 가을 양측의 충돌과 타협이 있은 후 이드리스가 병사하며 무흐신이 단독 샤리프가 되었다. 그러나 4년 후 그는 오스만령 예멘 총독 쿠르지 아흐마드 파샤와 마찰을 겪었고, 이에 후자는 아흐마드 이븐 압둘 무탈립을 제다에서 아미르로 옹립하였다. 1628년 5월 무흐신은 별 저항 없이 메카를 아흐마드에게 넘겨준 후 예멘으로 향하여 이듬해 사망한 후 사나에 안장되었다. 다만 그 해 9월 아흐마드 역시 신임 예멘 총독 깐수 파샤에 의해 처형(혹은 암살) 당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