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카 (문단 편집) ==== 8세기 [[이바디파|이바디]]-[[쉬아파]] 반란 ==== 그 후 반 세기간 평화를 유지하던 히자즈는 740년대 우마이야 조의 쇠퇴와 함께 다시 혼란에 접어들었다. [[바스라]]에서 우마이야 조의 타도를 모색하던 [[카와리지]] 세력의 [[이바디파]]는 메카에 아부 함자 알 무크타르 이븐 아우프를 파견해 반우마이야 선전에 나서게 하였다. 아라비아 남부 하드라마우트의 카디 압둘라 이븐 야흐야와 함께 거병한 알 무크타르는 747년 예멘의 [[사나(예멘)|사나]]를 점령하였다. 그 해 핫즈 기간인 8월 알 무크타르가 순례객으로써 메카에 당도하자 히자즈 총독 압둘 와히드는 메디나로 철수하였다. 이로써 압둘라와 알 무크타르는 메카를 무혈 접수하였다. 압둘 와히드는 메디나의 병력으로 반격하려 했으나 패배하였고, 10월 메디나 역시 이바디 군에게 넘어갔다. 히자즈를 평정한 이바디 세력은 이제 우마이야 조의 본거지 시리아를 노렸다. 그러자 748년 칼리파 [[마르완 2세]]는 압둘 말리크 이븐 무함마드의 토벌군을 파견하였고, 이바디 군은 와디 알 쿠라에서 대패하였다. 이에 메디나 주민들이 봉기하자 알 무크타르는 메카로 철수했는데, 우마이야 군의 추격을 받아 패하고 전사하였다. 그 후 압둘라 역시 패하고 전사하며 반란은 진압되었다.[* 압둘 말리크는 하드라마우트의 잔당을 공격하던 중 자신이 아미르 알 핫즈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에 그들과 휴전을 맺고 메카로 회군하였다. 그 후 750년 우마이야-압바스 교체기를 틈타 이바디 세력은 [[오만]]에 이맘국을 건설하였다.] 히자즈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반란을 겪던 우마이야 조는 750년 압바스 왕조로 대체되었다. 한편 우마이야 조에 대해 가장 강렬히 저항하고도 알리 가문이 아닌 압바스 조에 칼리파위가 돌아간 것에 대해 쉬아 세력은 박탈감을 느꼈다. 거기에 2대 칼리파 [[알 만수르]]가 알리 가문에 대한 박해에 나서자 분노한 쉬아 세력은 반란을 일으켰다. 762년 하산 이븐 알리의 증손자 무함마드 앗 나프스 앗 자키야가 메디나에서 봉기하자 메카의 안사르들도 그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무함마드 시절 승리의 요인이던 참호를 재활용하는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란은 그 해 12월 메디나가 함락되고 무함마드가 전사하면서 종식되었다. 그의 외조카이자 하산 이븐 알리의 고손자인 후세인 이븐 알리 알 아비드는 785년 알리 가문에 온정적이던 칼리파 [[알 마하디]]가 사망한 후 메디나에서 칼리파를 칭하며 봉기하였다. 하지만 초전의 승리에도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며 이내 압바스 군에 의해 [[예언자 모스크]]에 포위된 후세인은 3백여 동지들과 탈출하여 메카로 향하였고, 도시의 지지자들과 합류하였다. 신임 칼리파 [[알 하디]]는 마침 메카 순례에서 돌아오던 압바스 왕공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에게 진압을 맡겼다. 무함마드는 순례 카라반에 대한 베두인들의 습격에 대비해 수백의 호위 병력을 대동하고 있었고, 여기에 메카의 압바스 가문원들이 합세해 약 3백의 기병과 다수의 보병으로 구성된 군대가 편성될 수 있었다. 그들은 쉬아 세력에 대한 무력 시위로써 메카 시내를 행진한 후 도시 북쪽 외곽의 두 투와에 주둔하였다. 양측은 786년 6월 11일 투와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와디 파크에서 격돌하였다. 전투는 동틀 무렵 시작되었고, 후세인은 압바스 군의 취약한 좌익에 공세를 집중하였다. 그러나 우익을 지휘한 무함마드가 반격에 나서자 전투 경험이 부족한 쉬아 군대는 붕괴하였다. 승기를 잡은 무함마드는 안전을 보장하며 항복을 제안했지만 후세인은 이를 거절하고 계속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후 그의 수급은 알 하디에게 보내졌고, 칼리파는 이를 호라산으로 보내 현지 쉬아 세력에 대한 경고로 삼았다. 그 후 바그다드에서 3명 이상의 알리 가문원이 처형되었다.] 3백의 쉬아 전사들 중 백명은 전사하고 나머지는 제안대로 항복하였다.[* 다만 항복한 이들 중 압바스 가문원이던 아불 지프트는 논쟁 끝에 알 압바스 이븐 무함마드의 주장대로 처형되었다.] 다만 무함마드 앗 나프스 앗 자키야의 동생 술레이만과 아들 하산은 메카에서 처형되었다. 한편 많은 알리 가문원들은 순례객들 사이에 숨어 살아남아 후일을 기약하였다.[* 그 중 무함마드 앗 나프스 앗 자키야의 동생 이드리스는 마그레브로 도피하여 3년 후 [[이드리시 왕조]]를 세우고, 다른 동생 야흐야는 792년 이란 북부 다일람에서 반란을 일으켜 [[알라비 왕조]]의 초석을 놓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