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나라 (문단 편집) === 명나라의 경제발전에 대한 비판적 시선 === 사실 명의 경제발전은 유럽인이 연 대항해시대와 신대륙 경략으로 신대륙산 금은귀금속과 신대륙산 작물 유입과 동방무역이 원인이라는 시각이 있다. 상시 만성적인 귀금속 부족에 허덕여서 시장에 화폐공급량이 지나치게 부족했던 전대 황조의 환경은 상공업 발달에 심각한 족쇄로 다가왔다. 교초 지폐로 화폐경제를 보조하긴 했으나, 교초의 신용을 보장할 중앙정부의 무능으로 원말 교초하이퍼인플레 동아시아판 대공황으로 물물교환 경제로의 퇴화등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명나라는 어디까지나 유럽덕인 신대륙산 금은귀금속의 유입으로 은화가 보급되었고,이로인해 세수를 은자로 통일하는 일조편법이 가능해 농민들은 세금에 바칠 은자를 얻기위해 환금성 작물을 키우거나, 부업으로 수공업에 뛰어들거나, 적어도 주곡작물을 시장에 내다파는등의 행동으로 인해 급속도로 상공업이 발달하였다. 여기에 대항해시대로 해외 무역시장이 활짝 열린것과 신대륙의 은을 수입하기위해서라도 도자기등 수출용 공업이 크게 발전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가져왔다. 이미 중원은 수나라시기 내륙 수계 운하망을 통일했고, 오대십국-송 사이에 갑문 시스템을 완성시켰기에, 이미 북송기 1억이 넘는 중원의 시장을 하나로 묶어서 각각이 대국규모인 성(省 행정구역. 송나라시기엔 로路)간 무역만으로도 수공업공장인 민간주도 매뉴팩쳐의 시장수요와 물류망과 여유노동인력을 충족했고 분명히 도입압력이 충분했었으나, 은화 통화량 부족때문에 꺾여 버렸고, 내륙수계 교역규모가 일정이상 커지질 못했다. 더군다나 명나라의 일조편법처럼 조세를 은자로 통일함은 생각하기 힘든 기발한 제도이거나,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도입이 힘든것이거나 한것이 아니다. 원역사 일조편법의 기득권 저항은 미등록 토지를 장부에 올리고 세금을 거두는것에 저항이 있었지, 조세를 은자만으로 거두는것은 세금을 내는 입장에선 징세가 일원화되고 곡물이나 비단등 현물납부의 세금 가치가 시장과 괴리된 모순이 사라지고 합리적으로 변해서 납세의 부담이 줄어든다. 반대로 징세하는 입장에선 세운비용이 확 감소하고, 행정과 예산관리의 효율이 크게 증가해 마찬가지로 이득이다. 소작농부터 자영농,대토지 지주,공인,상인,관료,군주 모두 이익이 되고 도입필요성을 절실히 공감하는데도, 단순히 금속화폐 통화량 부족 때문에 역대 황조가 도입하고 싶어도 못한것이다. 명나라기 민간주도 매뉴팩쳐와 국제무역에 버금가는 내륙수운 성내 무역 물동량은 이미 북송때 모든 조건이 마련되었음에도 금속 화폐의 통화량 부족이 발목을 잡아 못 이뤄진것이다. 또 명나라의 발전에, 유럽을 통해서 들어온 신대륙 작물인 고구마 도입으로, 푸젠성과 광둥성, 광시성, 윈난성등 산투성이 남쪽 지역이 급속도로 개간되기 시작했다. 대항해시대로 인한 남중국해 무역 활황과 더불어서 미개척지에 가깝던 위 지역의 농업과 상공업이 골고루 발달해서, 중원의 새로운 경제중심지가 된다 [* 남중국의 경제력이 북중국의 경제력을 능가한 송나라 시기에서조차 푸젠-광둥-광시-윈난지방은 평야가 매우 빈약한 산간투성이의 볼모지여서, 광저우-취언저우-푸저우등 일부 해안 시박사 물류도시를 제외하곤 인구밀도가 거의 없던등 중원에서 가장 가난한 지방이였다. 송나라-명나라시기 인구밀도 자료[[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682969|#]]][* 송기 푸젠성의 경우 취안저우-푸저우-샤먼등의 해안 도시가 워낙 크게 발달해서 부양할 배후지 계곡 지방이 개간되어 중원 평균 이상의 경제력을 지녔으나, 광둥부터는 주강 삼각주 지방조차도 송나라기준 아담한 중소도시 규모인데다가, 주강 삼각주 해안지방을 제외한 광둥-광시 양광지방은 말 그대로 송나라에서 가장 가난하고 인구가 희박하던 지역이였다.] 여기까지 유럽이란 외부요소로 이뤄진 성장이고, 명나라 내적인 요인인 화북 목화 플랜테이션과 면직물을 필두로 한 장강삼각주 도시화, 그리고 호광지역 곡창 개발에 대해서 살펴보자. 목화 플랜테이션은 산업의 근본적인 성격으로 환금성이 좋으나,토질을 심각하게 황폐화시키고 또 조면기 개발전엔 자유의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노동강도가 필요하기에, 필연적으로 지역 주민들을 노예로 예속시키거나 노예에 준하는 인신구속으로 돌아가기에 해당 지역은 목화생산외의 모든요소둘, 사회경제산업의 구조가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목화원료를 공급받은 장강삼각주 지역은 모직물 산업으로 커다란 산업발달이 일어나고 번영의 극치를 누렸겠으나, 정작 원료 생산지엔 암적인 요소밖에 안된다. [* 카리브연안의 설탕과 목화 고무등의 플랜테이션으로 인해 토질이 황폐화되고, 흑인노예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시체를 내다버리는등, 생산지에선 영 좋지못했지만 생산품을 이송해 가공하는 유럽은 커다란 번영과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 [* 이러한 산업이 이뤄지던 카리브 군도와 브라질 동북부는 황폐화된 토질과 막장으로 고정된 사회경제산업구조로 세계 최빈 지역이다. 미 남부조차도 현대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목화노예경제는 남부의 경제에 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이익이 된 적이 없다고 하고, 21세기 선벨트 개발이전까진 풍족한 토지와 풍부한 천연자원과 온난한 기후, 물류에 이로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방이였다.] 원명청대의 중국의 남북경제격차가 강남의 개발과 소빙기로 인한 북중국의 한랭화만이 아니라, 강남을 위한 원료 공급지로 희생되었던 지분도 크다. 그리고 흔히 이뤄지던 호광지역 개발방식이, 장강지류들을 둑으로 막고 뭍으로 드러난 강바닥을 개간하는 식으로. 당연히 수계를 건드리는 일은 소련의 중앙아시아 개간처럼 극심한 환경교란을 가져다주고 역설적으로 장강 하구 지역의 농업에 커다란 타격을 가져다주었다. 장강 삼각주의 인구밀집과 도시화로 인한것도 있지만 위의 요소까지 더해서 삼각주가 곡창지대에서 식량수입지방으로 변했다. 즉 명나라의 내제적인 발전요인을 보면 사실 장단점이 극명하고, 근대산업화를 받아들이기 유리한 사회구조랑 역행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