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상 (문단 편집) == [[그리스도교]] == ''''''명상([[冥]][[想]] 또는 瞑[[想]])과 meditation은 그리스도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meditation은 조용히 생각한다는 뜻으로 그리스도교에서 숙고나 묵상기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메이지]] 시대 [[일본]]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meditation을 한자어로 번역하면서 [[冥]][[想]]과 [[瞑]][[想]]을 만들었다. 의미는 마찬가지로 [[생각]](想)을 잠재운다는([[冥]]) 뜻이다. 이 단어는 [[불교]]와 [[힌두교]] 등의 수행방법을 주로 이르는 뜻으로 쓰인다. 인도철학의 [[선정|dhyāna]]라는 개념을 영어로 meditation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dhyāna도 산스크리트 단어만 놓고 보면 '생각하기'라는 뜻으로 meditation과 의미가 유사했던 데다, [[힌두교]]나 [[밀교]] 등에서 널리 수행하던 dhyāna 방식인 관상명상이 기독교의 묵상기도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서구권에서 이렇게 번역되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meditation'은 주로 '묵상'이라 번역되는데, 성경에 나오는 구절들을 속으로 음미하며 기도하는 태도이다. 구체적인 실천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성경 구절이나 기도문 구절을 단순하게 외우면서 머리를 비우고 그 내용에 가라앉는 방식이나 머리를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상상하거나 분석하며 내용을 파고드는 방식이 있다. 일부 진보 성향 신학자들은 불교식 명상을 그리스도교에 접목하여 연구하기도 한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방식/태도로 [[관상기도]]가 존재한다. 관상기도는 하느님과 일체화된다는 의미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지향해야 하는 경지에 가까운 뉘앙스다. 개신교 일각에서는 불교나 힌두교식 명상, 요가 등을 위험하게 여겨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주장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1. [[이교]]의 수행법으로 본다는 점[* 특히 요가에 대해서 이렇게 보는 경향이 강한데, 태양숭배자세(surya-namaskar)가 주된 비판 대상이 된다.] >2. [[야훼|하느님]]과 같은 신성을 얻어 거룩해지기 위한 [[교만]]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보는 점[* 불교 명상의 목표는 신성을 얻어 거룩해지기 위해서가 아닌, 교만을 포함한 아상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아상을 통찰하여 해탈하는 것이다.] >3. 어디까지나 인간의 '수고와 애씀'에 불과하여, [[예수|구세주]]에 대한 [[이신칭의|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에 비하면 무의미하다고 보는 점 >4. 부정관이나 사마타, 위빠싸나 등의 불교 명상이 죽음을 지향하거나, 자아를 없애려 한다는 점에서 고대의 [[희생양|희생제의]]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보는 점[*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가져와서 이런 주장을 하는 신학자(예: 정일권)가 있다. 이는 불교에 대해 불자들마저 빠지기 쉬운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다. 부정관이든, 사마타든, 위빠싸나든 힌두교의 번제와 고행으로부터 타파하여 현상을 바로 보기 위한 명상법이다. 불교 전승 등에서는 오히려 사마타나 사마디가 신체의 기능을 최소화하여 수명을 늘려준다고 보는 관점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