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나리자 (문단 편집) == 해외 전시 == [[루브르 박물관]]을 떠난 '''공식적인''' 해외 순회 전시는 총 세 번 [[미국]]([[1962년]] [[뉴욕]]과 [[워싱턴 D.C]])과 [[일본]]([[1974년]] [[도쿄]]), [[소련]]([[1974년]] [[모스크바]]) 에서 진품이 전시된 바 있다.[* [[미국]]과 [[소련]]의 경우 [[2차 대전]] 당시 [[연합국]]으로서의 인연이라는 명분으로 대여를 허락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경우 이유가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림 한 점 갖다놓은''' 단독 전시였음에도 전시한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사회적 현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보여 새삼 모나리자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2007년]], 단독 전시가 아닌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이 '''석 달간''' 80만명의 관람객 수를 기록한 바 있다.] * [[1962년]] [[12월]]부터 [[1963년]] [[3월]]까지 [[프랑스]] 정부가 [[미국]] 정부에 그림을 빌려주어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국외에서의 공식적인 첫 진품 전시였던만큼 [[뉴욕]]에서만 전시 기간 동안 총 170만명이 관람했는데 불과 20초 보려고 전시일 내내 줄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당시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도 관람했다. [[파일:external/artstor.files.wordpress.com/dt219946.jpg|w=500&h=333]] [[파일:external/www.newstalk.com/72149_60_news_hub_multi_630x0.jpg|width=500]] * [[1973년]]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국 내각총리대신]]과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이 모나리자 일본 대여에 합의하여 일본에서의 전시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1974년]] 4월 20일부터 6월 10일까지 [[도쿄]] [[우에노]]에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입장료는 당시 환율로 200엔 정도. 왜였는지는 몰라도 티켓 예매권 수량이 남아서 주최측인 문화청이 크게 당혹했다고 하나 첫날 현장 관람객 줄은 그칠 줄을 몰랐다고 한다. 그 후 관람객이 크게 늘어, 마지막날인 6월 10일 일요일에만 3만명이 넘게 들어왔다. 평균 한 사람 당 약 '''10초''' 정도밖에 그림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전시 기간이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최종 집계된 관람객은 총 150만 5239명. 전시가 끝난 후 [[파리(프랑스)|파리]]로 돌아가기 전, [[모스크바]]에 잠깐 들러 전시되기도 했다. [[http://members2.jcom.home.ne.jp/70little_rascals0201/gedokuzai/gedokuzai/gedokuzai_all_contents/monalisa.html|참조]][[https://www.youtube.com/watch?v=DG-gbLURyqw|당시 영상]] [[파일:external/members2.jcom.home.ne.jp/kan_mona.jpg|width=400]] [[파일:external/pbs.twimg.com/CCPTKrlUIAEwu85.jpg]]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