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나리자 (문단 편집) === 모델 === 그림의 모델로는 피렌체의 유력자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인 리자를 지목하지만, 이 주장을 1550년에 최초로 내세운 [[조르조 바사리]]는 원본을 본 일도 없고, 조콘도 부인이나 다 빈치와 면담한 일도 없었기 때문에 20세기 들어서 다른 인물이 실제 모델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줄리오 데 메디치의 정부이자 나폴리 공비인 콘스탄차 다발로스, 밀라노 공비인 이사벨라 다라고나, 그리고 만토바 후작부인인 이사벨라 데스테가 거론되었고, 특히 다 빈치가 남긴 자료들 중 하나인 '''이사벨라 데스테의 측면 스케치는 모나리자의 여성과 매우 비슷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2008년에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도서관에서 1500년대 초 피렌체 관리가 "다 빈치가 조콘도 부인의 초상화를 제작중"이라는 발언을 남긴 문서를 발견하였고, 대부분은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한 초상화라 하기에도 이상한 면이 많다. 일단 별 관계도 없는 의뢰자의 아내의 초상화를 레오나르도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녔을 이유가 없다. 막말로 돈을 안 내서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자신의 화실에 고정까지 해서 걸어놓을 이유가 없다. 또, 당대에 여자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많이 늘어났어도, 보는 사람의 눈을 마주 보는 이런 자세는 금기였다.[* 천재 괴짜 화가 반 아이크가 개인용으로 그린, 정면을 보는 자신의 부인의 초상화 외에는 예가 없다.] 남에게 보여주려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그렸을 리가 없고, 보여줬다면 당대에 크게 논란이 되었을 텐데 그런 기록도 없다. 당시대에 정면을 봐도 되는 여성은 이브 아니면 성모 마리아뿐. 만약 이것이 그런 최초의 초상화라면, 19세기에 에두아르 마네가 [[올랭피아#s-1|파격적인 초상화]]를 선보여 크게 난리를 일으키기 400년 전에 이미 다빈치가 시대를 한참 앞선 것이다.~~티치아노 초상화 부인들은 정면을 잘도 보던데?~~ [[파일:external/2.bp.blogspot.com/412px-Isabella_di_Aragona_as_Mona_Lisa.jpg|width=600]] 그리고 루브르의 모나리자의 모델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일워스의 모나리자가 진짜 모나리자이고, 루브르의 작품은 조콘다가 아니라 또 다른 모델, '아라곤의 이사벨라'를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사벨라는 나폴리왕의 손녀이자 밀라노 공작 지안갈레아노 스포르차와 결혼했다가 이 시기 남편과 사별한 인물로, 15세기 말경 다빈치와 함께 15세기 말을 밀라노 궁전에서 지냈다. 이사벨라는 아름다운 축도 아니었고 20대도 아니었다. 또한 스위스에 남아있는 이사벨라의 초상은 루브르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초록색 옷은 스포르차 공작가문을 상징하는 색이라는 것도 이의 증거로 제시된다. 또한 이 그림에 얽힌 [[충공깽]]한 가설이 있는데, 바로 이 그림이 '''다 빈치가 여장한 자신을 모델로 그렸다'''는 가설이다. TV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왔으며 다 빈치의 초상화와 모나리자를 과학적으로 비교해보면 생김새가 같다는 등의 근거를 제기했다. --다 빈치가 워낙 괴짜로 알려진지라 사실이라고 해도 별로 놀랄 것 같지는 않다--[* 화가들은 인물을 그릴 때 모델과 관계 없이 자신의 얼굴과 닮게 그리는 일이 많은데, 의도하지 않고도 그런 결과가 나오는 일이 많다. 이유는 가장 친숙한 것이 매일 거울에서 보는 자신의 얼굴 또는 유아기에 잠재 의식에 각인된 자기가 닮은 부모의 얼굴이기 때문일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