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사드 (문단 편집) == 역사 == [[제2차 세계대전]] 중 [[홀로코스트|나치의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 이주시키기 위해서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의 제안으로 설립되었다. 1948년 6월 초대 국장을 레우벤 실로아흐(ראובן שילוח)로 하여 외무부 산하 정치국으로 출범하고, 이후 1949년 12월 13일에 정치국을 확대개편하여 정보조정연구소(the Institute for Coordination)로 재출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1년에는 총리 직속기구로 재편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모사드의 창설연도를 1951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953년에 취임한 2대 의장 이세르 하렐(Isser Harel)은 모사드를 전문가 조직으로 발전시켰으며, 외국에서의 첩보활동·정보수집·비밀정치공작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중동전쟁에서 큰 공을 쌓은 이스라엘 스파이 [[엘리 코헨]]의 형 모리스 코헨도 모사드 요원이었다. 하지만 아우가 [[시리아]]에서 교수형당하는 걸 그저 TV화면으로 바라봐야 했다. 모사드는 [[1979년]] 이전까지는 베일에 싸여있던 기관이었다. 일반인들은 모사드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정체가 [[1979년]]에 드러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좀 골때린다.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일어나는데 대사관 직원들은 인질로 잡히기 전에 기밀 문서를 파쇄기에 넣고 모두 파기했다. 하지만 대사관 내의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잉여|할 일이 없던]] 인질범들은 파쇄기에 갈아넣은 문서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복원해냈다. 여기서 모사드의 존재가 밝혀지게 된다. 1980년대 말~1990년 대 중반은 모사드에게 암울한 기간이었다. 벌여 놓은 각종 작전이 실패해 언론에 알려져 망신을 당해 국장이 여러차례 교체되기도 했다. [[높으신 분]]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정보기관을 휘두르면 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러다 [[2002년]] 메이어 다간이 국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취임사는 '적의 뇌를 삼켜라'다. >나는 레바논에 참전했을 때 가문끼리의 싸움이 초래한 비참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한 족장의 머리가 깨져서 뇌가 거리에 흩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족장의 부인과 어린아이들의 시체가 있었다. >이때 살아남은 한 아이가 족장의 뇌수를 한 움큼 쥐더니 집어삼켰다. >이것이 레바논 사람들이 가문끼리의 싸움에서 하는 행동이다. >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나는 여러분의 뇌가 다른 자들에게 먹히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뇌를 먹는 사람은 여러분이어야 한다. >---- >'''모사드 10대 국장 메이어 다간의 취임사''' 모사드는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다보니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졌지, 이스라엘 내 첩보를 주로 맡는 [[신 베트]](Shin bet)는 미국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첩보기관이다. 어느 나라든 그렇지만 모사드와 신 베트는 은근히 사이가 나쁘다고 한다. 그렇긴 해도 같은 이스라엘 첩보기관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땐 돕긴 하지만. 2012년에 만들어진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영화 게이트키퍼즈에 나온 전직 신 베트 국장들의 증언을 봐도 모사드가 마치 자신들이 우위인양 설쳐댄다고 마구 화를 내며 털어놓는 게 나와서 이를 본 모사드 출신 국장들도 불쾌하게 반론하던 적이 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은 정보기관이 꽤 많은 편이다. 모사드와 협력적인 국가/적대적인 국가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외교]] 문서 참조바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