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사드 (문단 편집) === 납치 === [[나치 독일|나치]] 잔당을 색출해 납치하여 자국에서 재판을 했다. 이미 사망했을 경우 사망 사실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사드는 [[나치 독일]]의 [[슈츠슈타펠|SS]] 중령이었던 [[오토 스코르체니]]를 포섭하여 나치 잔당 사냥을 함께 하기도 했다.[* 다만 스코르체니는 SS답지 않게 나치의 전쟁범죄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며 오히려 포로나 민간인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전적이 있다.] * [[아돌프 아이히만]]: 유대인 강제수용소 설치와 학살을 지휘했던 주역이다. 15년 동안 추적해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잠복해 있던 것을 찾아냈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납치해서는 국내법을 고쳐가며 사형을 시켰다. 이스라엘로 압송한 뒤 재판 자체는 정상적으로 하긴 했지만 납치 자체가 문제. 이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히만의 납치가 공개된 후 즉시 아르헨티나는 아이히만의 송환을 요구했으며 UN 안전보장이사회도 이스라엘의 아르헨티나 주권 침해를 인정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은 아르헨티나에게 사과, 배상함으로써 아이히만을 돌려보내지 않고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당시 세계 언론들은 '''"아이히만이 나쁘다"'''라는 보도만 줄기차게 해댔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세계가 나치를 어떤 이미지로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공소시효가 없는 반인륜 범죄자였고 어차피 연합국에 잡혔어도 사형 아니면 최소 무기징역이라 살아서 감옥을 나갈 가능성은 없었다. * [[요제프 멩겔레]]: 생체 실험의 주역이었다. 시체가 확인될 때까지 40여 년을 쫓아다녔는데 결국 잡지는 못했지만 죽을 때까지 악몽에 시달리게 했다고 한다. 멩겔레는 생전에 아이히만과 만난 적이 있고[* 그러나 아이히만은 멋대로 하는 성격이라 서먹서먹한 사이였다고 한다.] 아이히만이 교수형되는 것이 생중계되는 그 순간까지 살아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붙잡혀서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교수형에 처해질 것을 굉장히 무서워해서 집 주변에서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 밖을 내다보았으며,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여러 가지 정신병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80년대에 뒤늦게 이스라엘과 서방의 추적이 시작되었지만 1979년에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익사하는 바람에 미수로 처리되었다. * 헤르베르츠 추쿠르스: 일명 '[[리가]]의 교수인(Hangman of Liga)' 혹은 '리가의 도살자'로 불리던 [[라트비아]] 부역자로 악명 높은 아라이스 의용대 (Arajs Kommando) 소속이었다. 본래 라트비아의 비행사로 [[리가]]에서 [[도쿄]]와 [[감비아]]까지 비행 기록을 세우는 등 가히 라트비아의 [[찰스 린드버그]]라 할 수 있는, 라트비아의 국민 영웅이었다. 추쿠르스는 직접 국산 [[급강하폭격기]]인 추쿠르스 C-6bis를 맡아 설계할 만큼 라트비아의 항공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빅토르스 아라이스를 만나고 아라이스 의용대에 가입한 이후, 추쿠르스는 급격하게 흑화하여 온갖 범죄 행위에 가담하게 된다. 그는 아라이스와 독일군의 수족 노릇을 자처하여 리가 유태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그는 럼불라 학살과 리가 시나고그 방화에 참여하였고, 결과적으로 그의 의용대는 라트비아 거주 유태인의 절반을 죽였다. 전후에는 독일군 무리에 섞여 [[브라질]]로 [[나치의 남미 도주|도주했다]]. 그 곳에서도 사업체를 만들고 직접 비행기를 몰며 비행사 노릇을 했는데, 여기서 추쿠르스는 그의 정체를 숨기지 않고 활동하는 큰 실수를 범한다.[*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와 [[소비보르 절멸수용소]]의 소장이었던 [[프란츠 슈탕글]]도 이로 인해 [[서독]]으로 압송당했고, 구스타프 바그너와 [[요아힘 파이퍼]], 체림 수브조코프도 잘 숨기고 살다 정체가 공개되자마자 살해당했다.] 추쿠르스는 [[1965년]] 의도적으로 접근해온 모사드 위장 요원에게 [[우루과이]]에서 사업을 시작해 보라는 제안을 듣고 [[몬테비데오]]로 향했고, 그 곳에서 그대로 모사드에 납치당해 근교로 끌려가 참혹하게 살해당한다.[* 머리에 총상을 두 번이나 입고도 살아있었으며 끝까지 몸부림치다 더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23일경에 살해되어 시체는 3월 6일에 트렁크에서 발견되었는데, 총상이 온 몸에 산재했고 두개골이 박살나 있었다고 한다.] * [[아리베르트 하임]]: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의 의사였던 아리베르트 하임은 전후 외국으로 도망쳤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워낙에 자신의 신상 노출에 민감했던 탓에 모사드조차도 장장 [[2009년]]까지 그의 행방을 쫓았지만, 그는 이미 [[1992년]]에 카이로에서 죽어 있었다. 그는 [[프랑스]], [[스페인]], [[모로코]]를 거쳐 [[이집트]]에서 관심이 사라질 때까지 대기한 후 최종적으로는 [[남미]]로 가려 했지만, 예상 외로 빨리 잊혀지자 [[카이로]]에 정착하여 이름도 아랍식으로 바꾸고 [[이슬람교]]로 개종까지 한 후 카이로의 한 호텔에서 정체도 과거도 숨긴 채 외부 연락도 전부 끊고 사진조차 찍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그 역시도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화평하여 자신이 이스라엘로 압송당할 것을 평생 두려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 모르데카이 바누누: 내부고발자. 이스라엘인이지만 자국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폭로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도 독립할 자격이 있다고 하여 이스라엘 정부를 빡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직장에서도 해고당한 바누누는 그래서 영국으로 망명했는데, 1986년 9월 모사드 공작원의 [[미인계]]에 유혹당해 이탈리아에서 납치된 뒤[* 납치 과정에 대해서는 [[미인계]] 문서의 모사드 문단 참조.] 온갖 가혹행위를 당하며 심문을 받았고[* 같은 유대인이라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비하면 약하게 해준거다.] 결국 간첩죄[* 기밀 유출에 대가를 받지 않았고, 또 유출된 기밀이 인류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핵 개발 등이었기에 정확히는 간첩은 아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도 대놓고 죽이지 못하고 굳이 납치하는 수고를 벌인 것이다.]로 그냥 징역도 아닌 [[무기징역]]형이 선고됐다. 내부 고발자에게 내린 형벌이니까 소위 양심선언하면 이렇게 된다고 그야말로 시범케이스로 당한 셈. 다만 당시 이스라엘 법제상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불가능했기에 무기형으로 복역했다. 시범케이스 아니랄까봐 18년간 2004년 출소할 때까지 법적으로 가능한 처우를 최대한 가혹하게 했다.[* 한국으로 치면 무기형을 선고한 다음 [[경북북부교도소|경북북부제2교도소]] 독방에서 10여년 동안 감금했다고 보면 된다. 냉전 시기 대놓고 간첩질을 크게 하거나 대남 테러를 실행하다가 걸려 사형당하지 않고 남파간첩 혹은 간첩 협조 혐의로 무기형을 받은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이런 처우가 행해졌다고 한다.] 18년 복역기간 중 무려 12년간 독방에 감금됐고[* 이는 서방세계에서의 가장 긴 독방 수감기간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고 한다.] 창문 없는 좁은 방에서 24시간 전등이 켜진 채로 지내다가 2년 반이 지나서야 교도소 측이 밤에는 전등을 꺼줘서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있었다. 다른 수감자에게는 허용되는 신문, 라디오, TV도 상당히 오랜 기간 위험인물이라는 이유로 금지됐으며 면회도 기밀유출 가능성 핑계로 직계가족과 변호사에게만 허용됐다.[* 부모와는 기독교로 개종한 일로 관계가 나빴기에 이번 일로 의절한 상태여서 직계가족이 형 메이르 바누누와 아내와 자식들 뿐이었다.] 이스라엘 보수파들과 하레디들은 반역자이니 이렇게 당해도 싸다고 한다. 그나마 인권단체의 정부 비난 등에 힘입어 형기를 다 채우지는 않고 중간에 가석방이 되긴 했지만 출소 후에도 해외로의 이민이 금지당하며 가택 연금되어 있다. 전화와 인터넷은 이스라엘 정부에서 감시받고 있으며 외국인과의 접촉도 금지하고 있다. 이렇게 접촉을 차단을 해도 어떻게든 계속 양심선언을 하면서 버티고 있고 이스라엘 정부도 유명한 내부고발자라 팔레스타인 간부들처럼 대놓고 죽일 수도 없기 때문에 통제하는 것도 지쳤는지 노르웨이 [[이민]]을 허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거꾸로 대놓고 납치할 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