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용소종 (문단 편집) == 사후 == 고징은 모용소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11만 대군을 이끌고 나서서 영천을 함락시켰다. 왕사정은 분전했지만, 힘이 다하여 성을 내주었고 고징에게 항복한다. 이후 고징이 암살당하고 [[고양(북제)|고양]](高洋)이 [[북제]]를 세우자 왕사정은 도관상서, 의동삼사를 역임하는데, 우문태는 땅도 얻지 못한데다 유능한 장군까지 넘어가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한편, 모용소종이 죽자, 슬프고 한탄해 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고징 또한 이를 크게 슬퍼하여 그에게 사지절(使持節) 이청이연제제광칠주군사(二靑二兗齊濟光七州軍事) 상서령(尙書令) 태위(太尉) 청주자사(靑主刺史)를 추증하고, 시호를 경혜(景惠)라고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