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잠비크 (문단 편집) === 현대 이전 === 인접국인 [[잠비아]]를 사이에 두고 있는 [[앙골라]]와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함께 치렀던 관계이다. 모잠비크는 앙골라보다는 [[세계사]]에 아주 조금 더 이름이 알려졌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미 7–8세기 [[이슬람]] 상인들이 [[흑인]] 노예와 지역 작물을 교역하기 위해 왔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모잠비크라는 이름도 아랍 상인인 무사 빈비크(موسى بن بيك, Mussa Bin Bique)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본격적인 개발은 15–16세기 [[포르투갈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졌으며, 앙골라처럼 마푸투, [[베이라]], 팔마(Palma), 펨바(Pemba)[* 옛 이름은 포르투아멜리아(Porto Amelia).] 등 많은 항구도시가 생겨났다. 물론 모두 포르투갈이 [[인도]]-[[말라카]]-향료제도-[[중국]]-[[일본]]으로 거쳐 가기 위한 중계점이자 보급도시였다.[* 사족으로, 그래서인지 [[일본]] [[전국시대]]에 [[오다 노부나가]]의 호위를 맡았던 [[야스케]]가 이 나라 출신으로 추정된다. 일본에 노예로 팔려왔다가 노부나가를 섬기게 된 것이다.] 포르투갈의 흑인 노예는 명나라에도 팔렸는데, 임진왜란 시기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들어와 참전했다. 이들을 [[해귀]]라고 부른다. 일본에는 [[야스케]]라는 흑인노예 출신 사무라이도 있었다. 1898년에는 수도가 '일랴(Ilha)'라고도 불리는 도시 일랴드모삼비크(Ilha de Moçambique)에서 현재의 수도 마푸투(Maputo)로 천도하였다. 그 후 [[네덜란드]], [[영국]]이 침입을 꾀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19세기 말에는 포르투갈의 특허 회사가 내륙부 개발을 추진하였다. 1911년 한때 자치 식민지가 되었으나 1926년 포르투갈의 [[쿠데타]] 이후 그 직할 식민지가 되고, 1951년에는 포르투갈의 [[주(행정구역)|주]]와 동격의 [[해외령]]이 되었다. 모잠비크는 앙골라와는 달리 [[브라질]] 개척을 위한 흑인 노예를 그렇게 많이는 보내지 않은 듯하다. 브라질에서 [[대서양]]만 건너면 나오는 앙골라와 달리 [[희망봉]]을 지나 한참 올라간 아프리카 동해안에 위치해 운송 단가가 올라갔기 때문으로, 19세기 열강의 아프리카 침탈이 격화하자 포르투갈이 비로소 내륙 지대 개발에 관심을 보여 현재와 같은 국경이 형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