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강연합자치정부 (문단 편집) == 역사 == 1933년 3월, [[관동군]]이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영토인 열하성([[러허성]])을 침공해 합병한 [[열하사변]] 이래, 4월 차하르성을 침공하면서 내몽골을 향한 일본의 침략 야욕이 본격화되었다. 7월에 내몽골 지역의 유력인사이며 [[청나라]]에서 내몽골 지역의 왕공족이라는 귀족의 직함을 맡았었던 [[데므치그돈로브]]는 내몽골의 유력자들을 불러 모아 [[국민정부]]와 [[장제스]]에게 이러한 정세를 바탕으로 내몽골의 자치를 요구할 목적으로 몽골 자치 협의회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장제스는 데므치그돈로브 휘하의 내몽골 유력인사들이 내몽골 지역을 일본에 송두리째 넘기는 사태를 막기 위해 자치정부를 중앙 행정원 직속으로 설립해 줄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데므치그돈로브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만주국]][* 만주 지역에 세워진 [[일본 제국]]의 괴뢰국.]에 주둔한 일본 [[관동군]]과 군수물자들을 주고받으며, 그들과 몽골국의 건국을 논의하는 등 비밀리에 지속적으로 협력하였다.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Demchugdongrub.jpg|width=100%]]}}} || || 좌측이 [[데므치그돈로브]] || 1936년 2월 10일, [[데므치그돈로브]]는 현 중국 내몽골 자치구 시린궈러 맹의 쑤니터 우기 지역에 있었던 덕왕부에서 ''''몽골군 총사령부'''' 성립행사를 가지고 행사 연설에서 스스로 [[칭기즈 칸]]의 30대손이라 자칭하면서, 칭기즈 칸의 정신을 이어받아 몽골족의 모든 고유한 영토를 되찾고, 민족 부흥의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몽골판 [[대동아공영권]]~~ 데므치그돈로브는 그의 사령부가 [[소련]] 뜻대로 움직이는 [[몽골 인민공화국|외몽골]]에 대항하는 정통 몽골 세력임을 내세웠는데[* [[외몽골]]은 [[소련]]의 도움으로 독립했다.], 그 까닭은 데므치그돈로브의 장기 목표가 그의 세력을 기반으로 내몽골을 통일한 뒤, 외몽골([[몽골 인민 공화국]]), 소련령 [[부랴티아]]까지 합병, 몽골족의 통일을 이루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을 [[관동군]]은 만주국의 불안정[* 만주국의 흥안성 일대에는 몽골인이 다수 거주했다.] 등 여러 사안, 특히 소련과의 충돌을 제일 염려하여 극구 만류했다. 결국 그의 구상은 내몽골의 독립국가 정도로 상당히 수정되었다. 그 후 1936년 4월에 몽골족 총회가 열렸고, 5월 1일 '몽골군사정부강령'이 채택되었으며, 12일 ''''몽골군사정부''''의 성립이 선언되면서 평소 내몽골 귀족 사이에 명망이 깊었던 왕공족인 [[운왕]]을 몽골군사정부 주석직에, 그리고 데므치그돈로브는 [[총재]]직에 취임하였다. 1936년에는 다나카 류키치의 부추김으로 [[수동사변]]을 일으켰다가 개박살났다. 1937년에 [[노구교 사건]]를 빌미로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군의 중국 대륙 침공에 편승한 데므치그돈로브는 본격적으로 일본의 지원을 받아 몽골군사정부 영토에 주둔했던 [[국민혁명군|중국군]]과 전투를 하게 되었으나,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몽강군은 유명무실해지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이후 관동군의 지원에 따라 영내에 있는 중국군을 격퇴하기도 했으나, 내몽골에는 일본군의 영향이 더욱 짙어졌다.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Menjiang_Flag_(1936)_svg.png|width=100%]]}}}|| || 몽골군사정부의 깃발[* 몽강국은 그 이후에도 이 최초깃발의 색깔의 패턴을 벗어나지 않았다. [[중화민국 북양정부]]의 [[오색기]]를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 관동군의 지원하에 1937년 10월 27일, [[후허하오터시]]에서 2일 동안 개최된 제2차 몽골족 총회의에서 몽골연합자치정부의 법과 강령의 제정 문제와 2차 몽골 총회의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 등에 관해 논의하였고, 28일 후허하오터를 수도로 하여 '''몽골연합자치정부'''가 공식 출범하였다. 1938년에 사망한 [[운왕]]을 대신해 데므치그돈로브가 주석직에 취임하였고 그 후, 몽골연합자치정부는 일본 관동군의 권유에 따라 1938년 [[일본제국]]의 황하 이북, 차하르성과 허베이성, 산시성의 기존 괴뢰정부들인 '''[[찰동특별자치구]], [[찰남자치정부]], [[진북자치정부]]'''와 함께 몽강공동위를 구성하게 된다.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Menjiang_Flag_1945_svg.png|width=100%]]}}}|| || 몽골연합자치정부의 깃발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Mongol_United_Autonomous_Government_Quarter.jpg|width=100%]]}}}||{{{#!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government_officials_(Mongol_United_Autonomous_Government).jpg|width=100%]]}}}|| || 몽골연합자치정부의 정부청사 || 몽골연합자치정부 내각진들의 기념사진 || 1939년 9월 몽강공동위는 구성원인 세 개의 [[괴뢰 정권]]을 [[흡수]]하고 [[장자커우시]]로 천도하여, 데므치그돈로브를 정부수반 직책인 주석직에 추대한다. 데므치그돈로브가 이를 수락하고, 몽강공동위는 '몽강연합자치정부'로 이름을 바꾸며 몽강연합자치정부는 정식 출범한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던 [[선통제|푸이]]의 [[만주국]]이 미국 등의 묵인, [[중화민국 국민정부|중화민국]]의 불가피한 인정, 독일의 외교적 승인 등 추축국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데 비해, 몽강연합자치정부는 일본 제국과 만주국만이 승인해 주었다. 그마저도 1941년에 철회되기에 이른다.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Foundation_ceremony_of_Mengjiang_government.jpg|width=100%]]}}} || || 몽강연합자치정부 수립행사[* 사진만 보면 [[베트남]]이나 [[라오스]] 등지의 [[일본 제국]]의 괴뢰국 건국 행사 같아보이나, 일장기 옆의 몽강국 국기와 사진 우상단의 [[데므치그돈로브|덕왕]]이라는 한자를 보면 몽강국 건국 기념식임을 알 수 있다.] || '몽강연합자치정부'는 1939년 정식 수립했지만 실상은 관동군의 농간으로 [[산서성]] 북부와 [[하북성]] 북부의 한인 거주 지역까지 대거 포함시키는 바람에 인구의 95%가 [[한족]]이 되어 버렸다. 이는 데므치그돈로브의 내몽골인의 독립국이라는 구상과 동떨어진 데다가 이미 [[실권]]까지 모두 일본인이 쥐고 있었다. 더욱이 결정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1940년, [[왕징웨이 공작]]의 결과로 난징에서 [[왕징웨이 정권]] (역시 일본의 괴뢰였던) 이 정식 수립되며 [[일본 제국]]의 계략으로 몽강연합자치정부는 완전 독립이 아닌 명목상이지만 난징 정부의 [[자치정부]] 형태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자 분노한 데므치그돈로브는 [[장제스]]와 내통한다. 결국 이것은 관동군에 발각되었지만 데므치그돈로브를 대신할 만한 괴뢰가 없어서 데므치그돈로브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데므치그돈로브가 꿈꾼 내몽골 [[독립]]의 꿈은 깨지고 말았다. 몽강연합자치정부는 일본의 [[식민지]]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데므치그돈로브는 만주국의 푸이처럼 단지 [[꼭두각시]]였을 뿐이다. 1941년 8월 4일 [[왕징웨이 정권|난징 괴뢰정권]]하에 속하는 자치정부로 전락한 몽강연합자치정부는 '''몽골자치구'''로 이름을 개명당하고, 그 후에도 일본 [[관동군]]의 괴뢰정부로서 존속했었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난징 정권([[왕징웨이 정권]])하의 자치정부로 전락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난징 정부의 영향이 전혀 미치지 않는 데므치그돈로브를 수반으로 한 괴뢰정부였다. 몽골자치구가 중화민국의 연호인 민국을 쓰는 대신에 칭기즈 칸을 기준으로 한 것이 그를 뒷받침한다. 2차 대전의 말미에 결국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 직후인 1945년 8월, [[몽골 인민 공화국|몽골]] 군대와 [[소련군]]의 합동작전인 [[만주 작전]]으로 인해 소련군 플리예프 기병-기계화 집단이 내몽골 사막을 건너 쳐들어와 8월 19일 멸망하였다. [[소련]]은 아예 내몽고를 몽골에 병합시키려 하였으나 [[미국]]의 반대로 철회하였고 그 후 [[내몽골 인민공화국]]의 수립과 [[국공내전]]기 [[중국공산당]]의 내몽골 인민위원회의 설립을 거쳐 현재는 [[내몽골자치구]]로 이어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