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당 (문단 편집) === 인간문화재도 많은 [[극한직업]] === 실질적인 무당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극한 직업이다. 문화재청이나 전통협회에서 밀어주는 제대로 된 무당들도 많다. 특히 국제적인 [[유네스코]]에서까지 공인받는 무당들은 위의 사기꾼들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엄청난 사람들이다. 문화재급 무당은 '''육체적, 정신적, 학문적으로''' 엄청난 수행을 통과한 초인들인데, 실제로 무교에 통달하려면 '''이게 과연 인간의 삶인가?''' 싶을 정도로 힘든 고행 속에서 살아야한다. '''진짜 무당'''은 엄청난 고행으로 만들어지는 전문직이다. 흔히 생각하는 개인 사업자 형태가 아닌, 제대로 자리를 잡은 무당 루트를 타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춤]]과 [[노래]]와 역사 같은 전통문화를 몸으로 수련하고, 관련연구자들과 교류하는게 기본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단순한 장사치와는 거리가 멀고, 국내외 문화단체에서 인간문화재로서 인정받은 무당들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이런 분들은, [[굿]]도 못 하면서 유명인들에게 점을 쳐주는 사기꾼들보다도 인지도가 낮다. [[높으신 분들]]은 문화재 보존이랍시고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들이라며 전통적인 무당을 무시하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멸시받기 일쑤다. 대표적으로 만신 김금화 옹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기를, 19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서 [[미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영사관 직원들이 김금화 옹이 차려입은 [[무복]]을 보곤 "나라 망신 시킬 일 있느냐. 무슨 굿이냐. 당장 데리고 나가라"며 무대에 못 나가게 막았다. 이 때 다른 공연 다 끝나고 카펫 걷고 관객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판에 김금화 만신의 [[미국]] 공연을 제의했던 조자용 선생이[* 조자용 박사는 1926년생으로 호는 대갈. 본래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귀국해 건축가로도 명성이 있었으나, 중년 들어 한국민속과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져 [[도깨비]] 관련 설화나 전통 민화를 수집하는데 힘썼다. 2000년 사망.]가까스로 미국 영사를 설득했고, 김금화 만신을 떠밀어서 무대에 올라갔고, 죽기살기로 한두 거리 굿을 하고 작두를 타 보였다. 결과는 '''공연장에 있던 관객 모두의 기립박수.''' 김금화 만신은 무속인한테서 "당신은 신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더러 "그렇다, 당신 신 받고 무당되어야 할 팔자다"라고 받아주지 않고 "가서 절이나 '''교회'''(!) 다니면서 기도하고 살아라"하고 돌려보낸다. [[http://news.joins.com/article/5691301|기사]] 하지만 현실에서 [[노래]], 독경, [[춤]]까지 몇시간씩 해내는 완벽한 무당은 의외로 숫자가 적다. 무당을 마스터했다면, 돈벌이보다는 무당 자체에 의미를 두고 빡센 수행을 거쳤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사기꾼이 될 수 있는 수단이 널렸는데, '''작두타기, 유리밟기, 몇시간씩 노래하고 춤추기''' 같은 고행을 10년 이상 배우고 싶을 리가 없다. 종교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당이 점유하는 지위는 '''사제 혹은 신관과 정확히 같다.''' 어떤 종교건 제대로 된 성직자라면 속세의 부귀영화와는 자기 직위에 맞는 최소한의 연만 두고 자기 수행과 수련을 하며 이는 무당도 예외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