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벌귀족(은하영웅전설) (문단 편집) === 내전과 몰락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립슈타트 전역)]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은하제국 정통정부)]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attachment/053402.jpg|width=100%]]}}}||{{{#!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은하영웅전설 DNT.립슈타트 귀족연합.png|width=100%]]}}}|| || [[은하영웅전설/애니메이션|OVA]][* 이 장면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그림 [[테니스 코트의 맹세]]를 [[패러디]]한 것이다. 원본이 문벌귀족과는 대척점에 있는 [[프랑스 대혁명|현대 민주주의의 시발이 된 사건]]이란 게 아이러니하다. 사실상 대놓고 '''[[반어법|조롱한 셈이다.]]'''] ||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DNT]] || ||<-2> 립슈타트 숲의 별장에서[br][[립슈타트 귀족연합]]의 발족을 선언하는 문벌귀족들 || 우주력 797년 2월, '연합파' 귀족들이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발족하고 정식으로 제국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문벌귀족 대부분이 집결한 귀족연합군은 귀족들의 사병과 정규군이 결합하여 제국 중앙군 보다 훨씬 우월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톤 페르너]]의 독단행동 때문에 싸우기도 전에 상당수 귀족들이 추축파의 쿠데타에 휘말려 수도 [[오딘(은하영웅전설)|오딘]]을 탈출하지 못하고 붙잡히고 만다.[* 그렇다고 페르너의 독단이 없었다면 문벌귀족들의 대규모 체포를 피할 수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추축파가 실권을 장악한 시점에서 라인하르트가 이끄는 군부는 연합파의 동향을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었으며, 낌새만 있었다면 바로 체포 작전에 돌입할 준비를 갖췄기에 페르너의 라인하르트 암살 시도가 없었어도 결과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모인 귀족들은 그 위세와 활기가 대단하여, 수도 오딘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귀족들 대부분은 군재가 없는데 쓸데없이 전의만 넘쳐서 메르카츠나 파렌하이트 같은 유능한 제독들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거기다 선민의식만 넘치고 아랫사람 보기를 우습게 아는지라 패배와 실책만 거듭했고 결정적으로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으로 최소한의 민심마저 잃어버렸으며, 결국 마지막 전투인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 패배하고 근거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가 제국군에게 함락당하면서 귀족연합은 붕괴한다. 내전을 거치면서 다수의 귀족이 자결 및 전사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제국군에 포로로 잡히거나 [[페잔 자치령]] 및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했다. 그렇지만 '추축파'의 양 축인 리히텐라데 공작과 로엔그람 후작 역시 어디까지나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대항할 목적으로 손을 잡았을 뿐 서로를 내쳐야 할 잠재적인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내전 직후 추축파 귀족들 간에 2차로 분란이 벌어져 로엔그람 후작이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 로엔그람 독재체제를 수립했다.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참여했다 살아남은 귀족들은 반역죄로 핵심 가담자들은 처형 혹은 감옥행을 면치 못했고, 처벌을 면했다 해도 제국정부에 전 재산과 영지를 [[몰수]]당하고 빈곤층으로 떨어졌다. 귀족들의 사유지였던 수많은 저택이나 [[병원]] 등은 평민들을 위한 [[복지시설]]로 개방되었고, 귀족들이 소유하던 미술품들은 공공 [[미술관]]으로 보내졌다. 귀족들이 소유한 [[장원]]들은 모조리 몰수되어 평민들에게 분배되었고, [[농노]]들도 모두 해방되었다. 특권을 잃은 귀족들은 먹고살기 위해 [[부동산]], [[보석]], [[유가증권]]을 팔아치웠으나 약점을 잡힌 뒤라 헐값에 팔아야 했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나마 운이 좋게도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의 친척은 그의 탄원으로 재산을 몰수되지 않았다고 하지만(다만 문벌귀족 출신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극소수의 예외적 사례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귀족은 자신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라인하르트의 신체제를 비난했다. > 『......아름다운 정원은 천한 것들에게 짓밟히고, 두툼한 융단에는 흙발자국이 찍혔으며, 고귀한 자만이 잘 수 있었던 천장 달린 침대에 지저분하고 불결한 아이들이 침 자국을 남기는구나. 과거 위대했던 이 나라는 이제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짐승 같은 것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바라건대 이 추태와 참상이 하룻밤 악몽으로 끝나기를......』 > ----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3권 <자복편>, 김완, 이타카(2011), p.50 문벌귀족들은 자신들이 마음껏 누리던 부귀영화가 대다수 민중의 피땀을 쥐어짠 결과라는 걸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군대는 커녕 더 이상 조직적으로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힘으로 가능한 던 기껏해야 과격파 귀족 [[잔당]]의 지지를 받아 테러나 음모를 꾸미는 정도였으나, 그마저도 귀족 지배 체제에서 해방되어 권리를 되찾은 민중들이 이들을 자발적으로 감시했기에 어려웠다.[* 당장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출범이 발표되고 문벌귀족들은 아무리 그래도 황제가 있는 우리에게 장병들이 총구를 겨누겠냐며 자신들에게 동조해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5세기에 걸친 문벌귀족을 향한 증오에 빠져 있던 제국 민중들은 지지는 커녕 문벌귀족과 동맹을 타도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자진 입대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페잔으로 망명한 일부 귀족들은 구체제 복고를 위하여 [[페잔 자치령]]의 도움을 받아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하고, [[자유행성동맹]]의 지원 받아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수립했으나, 그들은 황제를 납치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거추장스러운 황제를 치우고 [[자유행성동맹]] 정벌 명분을 확보하려던 로엔그람 공작과 신 제국 하에서 기득권을 보장받으려던 [[페잔 자치령]]의 밀약에 의한 결과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황제 납치 및 망명정부 수립은 도리어 라인하르트에게 이득이 되었고, 별다른 기반도 없는 망명귀족들이 만든 망명정부는 너무나도 허약했다. 결국 정통정부는 동맹이 제국에 패배하자 해체되었고, 잔당들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이후 [[골덴바움 왕조]]가 멸망하고 [[로엔그람 왕조]]가 개창되면서 은하제국의 문벌귀족 계급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귀족 계급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로엔그람 왕조]] 수립을 적극적으로 도운 귀족들에게도 영지나 재산은 보전했으나 면세 등 그동안 누린 특권은 박탈했고, 국가 공신들에게도 작위는 내리지 않았다. 그나마 작위를 내린 사례가 죽은 친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대공으로 추서한 것과, 자신의 누이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를 대공비로 올린 것, 황자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에게 대공 작위를 준 정도뿐이다. 사실 이들 역시 실제 귀족을 늘린 것은 아닌데, 키르히아이스에게 내린 대공 작위는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도 뭐라 하지 않는 사자의 명예와 유족에 대한 보상 목적의 사후 추서에 불과했고, 황족이자 유력한 차기 황제인 알렉산더에 대한 대공위 역시 딱히 특권 계층을 늘리는 일은 아니다. 안네로제는 일단 백작부인 작위가 있었으니 귀족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니며 황제의 누나라는 지위에 더해 키르히아이스 사후 [[독신]]으로 남을 것이 주변의 시각에서도 명백했기에 세습에 대한 걱정도 없어 반대할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로엔그람 왕조]]의 초대 국무상서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은 자신과 조금이나마 인연이 있던 이들이 비참하게 사는 걸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조금이나마 몰수당한 재산에 대해 보상해주기도 했다. 문벌귀족들에 대해 냉혹한 태도를 고수하던 라인하르트도 마린도르프 백작의 선의는 굳이 막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경제관념 없이 낭비에 익숙해진 귀족들은 얼마 안 되는 보상금도 탕진해버리는 바람에 마린도르프 백작도 더 도울 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릴 정도였는데 이런 것에 대하여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냉혹하게 말을 했다. > '''"한 귀족이 죽어 1만 명 평민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이 짐에게는 바로 정의다. 굶어 죽기 싫다면 일을 하라. 평민들은 500년간 그리 해왔으니까."''' > ----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253 물론, 모든 문벌귀족들이 몰락한 건 아니다. 마린도르프 백작가를 비롯해 내전 때 라인하르트를 도운 이들,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처럼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이들은 귀족의 특권은 더 이상 누릴 수 없을지라도 이미 가진 재산은 지킬 수 있었다. 특히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은 문벌귀족이면서도 영민들의 존경을 받을 정도로 인망이 있었기에 신 제국의 국무상서를 역임했고, 딸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백작영애는 내전이 벌어지기 직전 가장 먼저 합류하여 라인하르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라인하르트의 개혁과 정복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고, 라인하르트의 아이까지 임신하면서 신 제국의 초대 황후이자 남편의 뒤를 이어 신 제국의 1인자가 될 정도로 출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