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앙 (문단 편집) === [[관구검]]의 난 === [[진서]] 경제기에 따르면 [[관구검]]과 [[문흠]]이 [[사마사]]에 대항해 수춘에서 반기를 들자 사마사는 연주자사로 있던 [[등애]]를 파견해 반란군을 막도록 시켰다. 등애는 거느린 군세가 약해 보이게 가장해 낙가성으로 유인해서 쳐부수려는 계책을 세웠고 사마사도 대군을 은밀히 낙가성으로 이동시켰다. 이에 속은 문흠이 낙가성에 가보니 이미 사마사의 대군이 주둔한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문앙은 당시 나이가 18세로 아직 어렸으나 용력과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 문앙이 아버지 문흠에게 말했다. >성에 올라 북을 쳐 기세를 돋우길 청합니다. 적군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이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관구검전에 주석으로 달린 위씨춘추에 따르면 이에 문흠은 군사를 둘로 나누어 밤중에 양갈래로 공격했다. 문앙이 이끈 군사가 먼저 도착했고 문앙이 사마사를 큰 소리로 부르자 사마사군은 혼란에 빠졌다. 문앙은 북을 울려 병사들을 고무하며 세 번 연달아 공격한다. 이전에 사마사는 눈에 종기가 나서 의원에게 자신의 종기를 째게 했었는데 문앙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서 '''눈이 빠져 나왔다.''' 그러나 군사들이 두려워할까봐 옷으로 눈을 가리고 통증이 심해지자 이빨로 옷을 물어뜯으며 참아 주변인에게 이를 숨겼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에 늦은 문흠은 도착하지 못해서 싸움에 참여할 수가 없었고 날이 밝자 문앙이 물러났고 문흠 또한 군을 이끌고 물러났다. 문앙과 문흠이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퇴각하자. 사마사는 문흠이 도망갈 것이라 말하며 장수들에게 정예병으로 이를 추격하도록 명했다. 여러 장수들은 문흠은 경험 많은 장수고 문앙은 어려도 날래고 용맹하며 병사를 이끌고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손해본 것도 없으니 도망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마사는 세 번째 북소리에 기세가 바닥나는 법이라는 [[춘추좌씨전]]의 구절을 인용하여 문앙이 세 번 북을 울려도 문흠이 응전하지 못했으니 기세가 이미 꺾여 달아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흠은 달아나려고 했는데 문앙이 말했다. >먼저 그 기세를 꺾지 않으면 달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날랜 기병 10여 기를 데리고 적군의 선봉을 꺾고 진세를 무너뜨렸다. 문앙이 가는 곳마다 적군은 모두 흩어져 달아나 결국 퇴각했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문앙이 다시 필마단기로 추격군의 수 천명의 기병 속으로 뛰어들어 단번에 100명을 죽이고 빠져나왔다. '''이같이 6~7 차례하자''' 추격하던 기병들이 감히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고 한다. 진서 경제기에는 '사마사가 좌장사 사마련에게 날랜 기병 8천을 주어 문흠군의 옆을 추격하게 하고 장군 [[악침]]에게 하여금 보병을 거느리고 그 뒤를 끊게 하였고 문흠의 군대는 사양에 도달할 때까지 여러 차례 군진이 무너졌고 노화살이 비가 오는 듯이 쏟아지자 문흠은 큰 방패로 몸을 가리고 달아났다. 문흠군이 대파되니 병사들은 모두 항복했고 문흠 부자와 휘하의 장수들은 달아나 항성을 지켰다. 문흠이 패배했다는 것을 들은 관구검은 무리를 버리고 밤에 회남으로 달아나다가 추격을 당하여 죽었다.'고 되어 있다. 이게 경제기만의 기록이라면 진서 특유의 문제상 의심할만도 한데 [[정사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에서도 똑같이 '(사마)대장군이 효기(驍騎,용맹한 기병)를 풀어 추격하여 그를 대파하였고 문흠은 달아났다. 이 날 관구검은 문흠이 싸움에서 패했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밤중에 달아나고 무리가 붕괴하였다.'라고 되어있다. 즉 사마사가 보낸 기병이 한창 문흠군을 철저히 측면에서부터 개박살내는데 정신이 팔린 사이에 문앙이 목숨걸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죽어라 분투했던 상황인 것인데 즉, 삼국전투기 같은 창작물 매체와 달리 문앙이 뒤를 단기로 끊었다기보단 전장터의 혼란 상황에서 위군의 기병이 문흠군의 후열을 박살내는데 정신이 팔린 사이로 들어가서 혼란한 틈을 타고 이같이 수백명 격파에 성공했다고 보는것이 옳다. 결국 문흠군 자체가 붕괴했지만 지휘관들만 몸을 빼 간신히 살아남았다. 도주하던 와중에 이렇게 혼자서 분투하면서 기병 수백명을 박살냈고 전술적인 식견도 있었던 것이 보이니만큼, 당시 문앙이 어린나이에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좋은 주군을 만났다면 충분히 명장으로 대성했을만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문앙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문흠군은 위군에게 대패했고 문흠 부자는 항성에서 결국 오나라로 달아나 손준에게 망명했다. 관구검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병세가 위독해진 사마사는 얼마 후 죽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