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소년 (문단 편집) === 서양 === 고대 [[그리스]]에서는 미소년과의 동성연애가 곧 유행이자 '''권장할 만한 일'''이었다. [[플라톤]]을 비롯한 저명한 [[철학자]]들은 물론이고, [[알렉산드로스 3세]]와 같은 군주들도 즐겼으니 말 다한 셈이다. 이 당시에는, 가장 고귀한 사랑은 [[게이|남자와 남자의 사랑]]이며, 그 다음이 [[이성애|남자와 여자의 사랑]]이고, 그 다음이 [[레즈비언|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이었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은 미소년이되 '''가녀린 샌님이 아니라 성격이 용맹하고 남성적이며 건강한 미소년'''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를 묘사한 화폭을 보면 알 수 있듯 하얗고 어여쁜 미소년을 좋아했다. 그러나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 [[소크라테스]]는 미소년을 멀리 하라고 하였다. [[그리스 신화]]를 봐도, 남신들이 미소년과 연애를 하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아폴론]]의 경우에도 미소년인 [[히아킨토스]]를 총애하여 데리고 다니기도 하였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98421&cid=58143&categoryId=58143|#]] 여자 밝히기로는 악명이 높은 [[제우스]]도 미소년 [[가니메데]]를 [[올림푸스]]로 데려와 결에 두고 술 따르게 하는 것을 즐겼다. 또한 '남색 대상의 미소년'을 뜻하는 캐터마이트(catamite)라는 영단어는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와서 영어 사전에 당당히 적혀있다. 이렇게 성인남성과 미소년이 사귀는 경우 성인남성은 미소년에게 최대한 많은 지식과 지혜를 전수하며 미소년은 이를 겸허히 배우려 노력할 것을 적극 권장받았다. 고대 그리스 시기의 동성애 문화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다면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를 읽어보면 좋다. 건전한 관심이라면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히겠지만, 음흉한 관심이라면 금세 쿨쿨 자게 될지도 모른다. [[로마]] 시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약간 멀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당대의 연설가로 명망이 높았던 대(大) [[카토]]가 '''"미소년 [[노예]]가 땅값보다 비싸니 개탄할 일이네"'''라고 할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았다. 이후에 [[그리스도교]]가 [[밀라노 칙령|공인됨에 따라]] 미소년과의 동성애는 된서리를 맞아 [[근대]]까지 터부시되었지만, 여전히 귀족들이나 부유층들 사이에서는 빈번히 일어났었다. 특히 근현대 유럽의 상류층 귀족사회의 자제들은 기숙학교라는, 남성간의 동성연애가 유행하기 딱 좋은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에 관련된 일화도 많았다.[* 영국의 유명한 문학가였던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추문에 휩싸여 몰락했던 것을 보더라도 당시 영국 사회 내에서는 겉으로는 터부시되더라도 이런 일이 흔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나폴레옹 또한 브리엔(유년 사관학교)에 재학하며 기숙하던 당시 이런 분위기를 거부하여 미움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