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시시피 (문단 편집) == 정치 == 미시시피 [[주지사]] 일람은 [[역대 미국 주지사#s-18|역대 미시시피 주지사]] 문서 참조. ||<-3> {{{#FFFFFF '''미시시피주 역대 대선 결과'''}}} || || 연도 || [include(틀:민주당(미국))] || [include(틀:공화당(미국))] || || {{{#FFFFFF 2020}}}|| 바이든 41.06% || '''트럼프 57.60%''' || || {{{#FFFFFF 2016}}}|| 클린턴 40.06% || '''트럼프 57.86%''' || || {{{#FFFFFF 2012}}}|| 오바마 43.79% || '''롬니 55.29%''' || || {{{#FFFFFF 2008}}}|| 오바마 43.00% || '''매케인 56.17%''' || || {{{#FFFFFF 2004}}}|| 케리 39.75% || '''부시 59.44%''' || ||{{{#FFFFFF 2000}}}|| 고어 40.70% || '''부시 57.62%''' || || {{{#FFFFFF 1996}}}|| 클린턴 44.08% || '''돌 49.21%''' || || {{{#FFFFFF 1992}}}|| 클린턴 40.77% || '''부시 49.68%''' || || {{{#FFFFFF 1988}}} || 두카키스 39.07% || '''부시 59.89%''' || ||<-3> {{{#FFFFFF '''미시시피주 역대 주지사 선거 결과'''}}} || || 연도 || [include(틀:민주당(미국))] || [include(틀:공화당(미국))] || || {{{#FFFFFF 2023}}}|| 브랜든 프레슬리 47.09% || '''테이트 리브스 51.55%''' || || {{{#FFFFFF 2019}}}|| 짐 후드 46.83% || '''테이트 리브스 51.91%''' || || {{{#FFFFFF 2015}}}|| 로버트 그레이 32.38% || '''필 브라이언트 66.24%''' || || {{{#FFFFFF 2011}}}|| 조니 듀프리 39.02% || '''필 브라이언트 60.98%''' || || {{{#FFFFFF 2007}}}|| 존 아서 이브스 42.10% || '''할리 바버 57.90%''' || || {{{#FFFFFF 2003}}}|| 로니 머스그로브 45.81% || '''할리 바버 52.59%''' || || {{{#FFFFFF 1999}}}|| '''로니 머스그로브 49.62%''' || 마이클 파커 48.52% || || {{{#FFFFFF 1995}}}|| 딕 몰퍼스 44.44% || '''커크 포디스 55.56%''' || || {{{#FFFFFF 1991}}}|| 레이 매버스 47.59% || '''커크 포디스 50.83%''' || ||<-3> {{{#FFFFFF '''미시시피주 역대 연방상원 선거(Class 1) 결과'''}}} || || 연도 || [include(틀:민주당(미국))] || [include(틀:공화당(미국))] || || {{{#FFFFFF 2018}}}|| 데이비드 바리아 39.47% || '''로저 위커 58.49%''' || || {{{#FFFFFF 2012}}}|| 알버트 고어 40.55% || '''로저 위커 57.16%''' || || {{{#FFFFFF 2008[* 트렌트 로트의 연방상원의원직 사임으로 재보궐]}}}|| 로니 머스그로브 45.04% || '''로저 위커 54.96%''' || || {{{#FFFFFF 2006}}}|| 에릭 플레밍 34.87% || '''트렌트 롯 63.58%''' || || {{{#FFFFFF 2000}}}|| 트로이 브라운 45.92% || '''트렌트 롯 65.88%''' || || {{{#FFFFFF 1994}}}|| 켄 하퍼 31.20% || '''트렌트 롯 68.80%''' || || {{{#FFFFFF 1994}}}|| 웨인 다우디 46.09% || '''트렌트 롯[* 공화당 前 연방상원의원(1989 ~ 2007), '''前 원내총무(1995 ~ 1996, 2007), 前 원내대표(2001 ~ 2003)'''] 53.91%''' || ||<-3> {{{#FFFFFF '''미시시피주 역대 연방상원 선거(Class 2) 결과'''}}} || || 연도 || [include(틀:민주당(미국))] || [include(틀:공화당(미국))] || || {{{#FFFFFF 2020}}}|| 마이크 에스피 44.13% || '''신디 하이드 스미스 54.11%''' || || {{{#FFFFFF 2018[* 새드 코크런의 임기 중 사망으로 재보궐]}}}|| 마이크 에스피 46.37% || '''신디 하이드 스미스 53.63%''' || || {{{#FFFFFF 2014}}}|| 트레비스 칠더스 37.89% || '''새드 코크런 59.90%''' || || {{{#FFFFFF 2008}}}|| 에릭 플레밍 38.56% || '''새드 코크런 61.44%''' || || {{{#FFFFFF 2002}}}|| [* 민주당 후보 미등록. '''개혁당'''의 '''숀 오하라'''가 15.42%를 득표해 2위로 마감] || '''새드 코크런 84.58%''' || || {{{#FFFFFF 1996}}}|| 부티 헌트 27.39% || '''새드 코크런 71.03%''' || || {{{#FFFFFF 1990}}}|| [* 민주당 후보 미등록] || '''새드 코크런 100.0%''' || [include(틀:미시시피 주의회의 원내 구성)] 줄곧 보수적인 지역이다. 남북전쟁 직후부터 약 100년간은 민주당 텃밭이었으나, 민주당의 진보화 및 공화당의 보수화와 남부전략이 통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로는 텃밭이 뒤바뀌어 공화당 텃밭이 되었다. 197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새드 코크런 상원의원(Thad Cochran. 1978~2018, 7선)이 공화당으로 당선되고 198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트렌트 롯(Trent Lott. 1988~2007, 4선)이 당선된 뒤로 미시시피는 줄곧 공화당에서만 상원의원이 배출되었다. 다만 주 의회는 교체가 늦어 2010년에도 보수적인 민주당 계열이 유의미한 세력을 차지하고 있었다.[* 2018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신디 하이드 스미스]]가 민주당원 이었다.] 미시시피는 인종별 투표 경향이 뚜렷한 편이다. 예를 들어 2012년 대선에서 미시시피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44%,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가 55%를 득표했는데, 백인의 89%가 롬니에게 투표했고 흑인의 96%가 오바마에게 투표했다. [[http://edition.cnn.com/election/2012/results/state/MS/president/#exit-polls|#]] 즉 한국으로 치자면 미시시피 [[미국 백인|백인]]들의 공화당 지지율은 [[대경권|TK]]의 [[국민의힘]] 지지율과, 미시시피 [[미국 흑인|흑인]]들의 민주당 지지율은 [[전라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개표결과 지도에서도 드러나는데, 흑인의 밀집지역인 미시시피강 유역부분과 주도인 잭슨은 시퍼렇지만 백인이 우세한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과 걸프 지역은 빨간색으로 나타난다. 흑인 비율이 전통적으로 높지만 역설적으로 흑인의 지위는 낮았고, 이로 인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흑백 갈등이 크게 부각된 지역이기 때문도 있다. 실제 미국에서 가장 늦게까지 흑백 통합이 안 이루어진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미국 [[흑인민권운동|민권운동]]의 주요 마당이기도 했다. 이런데도 특이한 것은 미국의 첫 흑인 상원의원이 미시시피에서 나왔다는 것.[* 첫 흑인 하원의원은 1868년에 [[루이지애나]]에서 나왔다. 참고로 노예 출신은 아니었다.] 이건 사실 미시시피 백인들의 과반 이상 지지로 선출된 것이 아니라, [[남북전쟁]]이 끝나고 북부에 의한 재건기간 동안 민주당 세력이 위축되면서 공화당 소속으로 1870년대에 흑인 상원의원이 두 명이나 나온 것이었다.[* 남북전쟁 직후 재건 기간에 남부 다른 주에서도 이런 식으로 공화당 소속으로 선출된 흑인 하원의원이 좀 있었다. 하지만 [[공화당 급진파]]들이 퇴조하면서, 1880년대 이후부턴 남부에서 다시 흑인의 정치 참여를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차단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권운동이 활발해지기 전까지 남부에서 흑인은 정계에 진출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두 명의 흑인 상원의원 중 한명은 [[노예]] 출신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하이럼 레벨스는 1년 만에(1870~1871) 물러났고, 뒤이은 블랑시 브루스도 단임(1875~1881)에 그쳤다. 이후 미시시피는 물론이고 86년 동안 정계에서 흑인 상원의원은 나오지 못했다.[* [[1967년]]~[[1979년]]의 에드워드 브룩(공화당)이 [[매사추세츠]]에서 연임을 했다. 이후에는 [[1993년]] [[일리노이]]에서 단임한 캐럴 모슬리 브라운(민주당)과 역시 [[2005년]]부터 [[2008년]] 대통령 당선된 직후까지 재임한 [[버락 오바마]],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11개월만 재임한 롤런드 버리스뿐이었다. 그리하여 [[2009년]] 말부터 다시 흑인 연방 상원의원이 없었는데, [[2013년]] 1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팀 스콧(공화당)이 연방 상원의원 자리에 오르고, 이어 2월, [[매사추세츠]]에서 [[존 케리]]의 후임으로 모 카우언(민주당)이 연방 상원의원이 되면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흑인이 동시에 연방 상원의원에 재직하게 되었다. 하지만 카우언이 6월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서 약 4개월 만에 다시 흑인 상원의원은 1명이 된다.] 인종차별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답게 미시시피에서 활동한 상원의원들 역시 인종차별주의자로 악명이 높았다. 대표적으로 [[제임스 이스트랜드]](James Eastland, 1942~1978 6선)는 1956년부터 1978년에 은퇴할 때까지 상원 법사위원장직을 독점하고 민권운동과 관련된 법안들이 의회에서 논의되거나 통과되는 것을 극력 방해했다. 이스트랜드의 후배 상원의원이었던 [[존 C. 스테니스]](John Stennis, 1947~1988 7선) 역시 1964년 민권법에 반대하고 '마틴 루터 킹의 날' 제정에 반대하는 등 인종차별주의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흥미롭게도 [[제임스 이스트랜드]]와 [[존 C. 스테니스]]는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후일 대통령이 되는 [[조 바이든]]과 가까운 사이였고, 바이든은 이스트랜드와 스테니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가 경쟁자들에게 공격받았을 정도였다.[* 이스트랜드는 초선 상원의원 바이든이 의욕적으로 발표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대해 "그런 식으로 연설하고 입법하면 역대 최연소 단임 상원의원이 될 줄 알아라."고 할 만큼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바이든이 상원 법사위원회 입성을 목표로 하면서부터 이스트랜드와 바이든의 사이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바이든은 이스트랜드에게 많은 정치적 조언을 받았고, 심지어 이런 농담까지 나눌 정도였다. “워싱턴에서 만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었나요, 위원장님?”(바이든) “에어컨이야. 조. 4월이 되고 햇빛이 들어오면 의사당 내 회의실 온도가 60도까지 올라가. 그러면 우리는 그냥 집으로 갔어. 그런데 에어컨이 설치되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1년 내내 워싱턴에 머물면서… 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어.”(이스트랜드)][* 존 스테니스는 상원의원 식당에서 점심식사 자리를 찾다가 초선 상원의원 바이든이 식사를 하지도 않고 스테니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모습을 보고 고마워했다고 한다. 그 뒤로 스테니스는 바이든에게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많은 도움을 주었고 1988년에 정계를 은퇴하면서는 모두가 눈독을 들이던 자기 상원의원 사무실을 바이든에게 물려주었다. 바이든의 말에 따르면 스테니스는 사무실을 물려주기로 약속하는 자리에서 바이든을 붙잡고 "자네가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 민권을 위해 왔다고 했지, 조? 민권운동은 흑인뿐만 아니라 오히려 백인의 양심을 해방시켰다네. 그건 내 영혼을 해방시켰어."라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고 한다. 존 스테니스는 상원 군사위원장으로 장기간 재임했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에도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7번함은 그의 이름을 따서 '존 C. 스테니스' 함으로 불린다.] 또한 민권운동사에서 악명높은 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건이 필라델피아[* Philadelphia. 이 주 중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펜실베이니아]]의 유명도시 [[필라델피아]]와 이름이 같다.]에서 민권운동 단체 CORE(Congress of Racial Equality)의 활동가 둘과 [[뉴욕]] 출신 대학생 한 명이 폭탄 테러를 당한 흑인 교회를 조사하러 갔다가 실종된 후 KKK 단원들에게 살해당해 인근 저수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으로, 후에 미시시피 버닝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그 외에도 두 자리수가 넘는 린칭(Lynching)[* [[사적제재]]의 일종인 사형 행위로 여기서는 백인들이 흑인 하나 잡고 집단폭행하다 죽인 뒤 나무에 목을 매달아 버리는 행위.] 살인 사건이 발생했으며, 옆동네 [[앨라배마]]와 함께 민권운동 관련 범죄 건수로 1,2위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미국 법 체계의 특수성과 행정 착오로 인해 황당하게도 이 주에서는 명목상으로 2013년까지 노예제가 존속해오고 있었다. 미국에서 노예제는 1865년 수정헌법으로 폐지되었다. 다만 1865년 당시 이 주에서는 노예제 폐지 헌법을 찬성하지 않았다. 이 주에서 찬성하지 않았어도 75%의 주만 비준해도 헌법 개정이 가능하기에 실질적으로 노예제는 폐지되었다. 이후로도 헌법 수정의 복잡한 절차 때문에 1865년 수정헌법의 비준이 지연된 것. 물론 다른 주들의 비준을 통해 미국 헌법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실질적으로도 노예제가 전근대적이었으므로 이 주에서도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었지만, 헌법상으로는 1995년까지도 노예제 항목을 폐지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절차를 빼먹은 것이다. 즉, 헌법 개정의 복잡한 절차 때문에 수정헌법 비준이 지연되고 잊혀지다가 1990년대에 이 사실이 발견되어 1995년에 1865년 수정헌법을 비준하게 된 것이다. [[https://www.npr.org/2017/05/05/526900818/the-bad-grade-that-changed-the-u-s-constitution|관련 기사]]. 그런데 여기서 1865년 수정헌법 비준을 연방문서기록국에 통보하는 절차를 빼먹는 실수를 또 해버렸다. 이것이 뒤늦게 발견되어 2013년 주정부에서 연방에 1865년의 수정헌법을 비준했다는 것을 통보함으로써, 1865년 노예제 폐지 수정헌법 비준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동성애]]에 대한 태도 또한 굉장히 보수적이라 2015년 6월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였다. 심지어 웬만한 도시에서 다 이뤄지는 [[퀴어 퍼레이드]]조차 2018년에 처음 이뤄졌을 정도로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지역. 당시 공무원들까지 동원되어 퍼레이드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오히려 2500명이 집결되어 성황리에 치러졌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