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얀마 (문단 편집) === 인도계 미얀마인 === [[대영제국]]은 미얀마를 식민통치하는 와중에 농지 개간 및 도시 인프라 확대 차원에서 많은 인도계 주민들을 미얀마에 정착시켰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리랑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피지]] 등 다른 대영제국 식민지에 정착한 인도인들은 주로 [[타밀나두]] 지방의 [[수드라]]와 [[불가촉천민]]으로 고향에 농사 지을 땅이 없는 가난한 소작농들이 많았던 반면, 미얀마에 정착한 인도인들은 주로 [[아삼]] 지방과 [[마니푸르]] 지방의 브라흐민과 크샤트리야 등 상위 카스트 출신이 많았다. 대영제국에서 버마인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힌두교도 소수민족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정책이었을 수도 있다. 주로 [[양곤]] 시에 정착한 힌두교도 상인들은 버마 현지인들을 [[불가촉천민]] 취급을 하며 통혼은커녕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미얀마에 진주해오자 이들 중 상당수가 인도로 도망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양곤 시 인구의 다수가 힌두교도였지만 2차대전과 그 이후 버마의 독립을 계기로 거진 다 떠나버렸고, 현재 미얀마에 거주하는 인도계 힌두교도 및 미얀마계 힌두교도 숫자는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2% 내외이다. 양곤에 정착한 힌두교도들과 달리 인도 동부에서 온 무슬림들은 버마 현지인 여자들을 현지처나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힌두교에서는 외국인과의 통혼을 금기시하는 반면 이슬람에서는 무슬림 남성과 비무슬림 여성과의 결혼을 권장하는 편이다. 이에 버마인 승려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여기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무슬림들을 전부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고 벼르게 되었다. 힌두교도들은 이 무슬림들을 열등인종 취급하고 무시하는데, 무슬림들은 버마 현지인 여자들을 첩으로 삼으니 버마인들 입장에서는 이가 부득부득 갈릴만 했다. 원래 이슬람에서는 무슬림 남성과 기독교인, 유대교인 여성과의 통혼은 권장하는 반면 무슬림 남성과 불교, 힌두교도 여성과의 통혼은 허용하지 않는다. 양곤 시에 정착한 무슬림 상인 상당수는 정식 결혼을 올린 것이 아니라 몰래 애인삼아서 현지처를 둔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로힝야]] 난민문제의 발단은 버마인들이 느낀 이러한 위기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로힝야를 제외한, 미얀마의 무슬림 인구 대부분은 무슬림 남성과 버마 현지인 비무슬림 여성의 혼혈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시크교도 군인들도 적지 않은 수가 대영제국의 군인으로 양곤 시에 정착했으나 현재는 거의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이다. 현재 남아있는 인도계 미얀마 시크교도들은 버마인 등 토착민들과 동화된 사례가 적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