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영관계 (문단 편집) === 19세기 === 독립 후에도 미국과 영국은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다. 미국은 영국과 [[미영전쟁]]을 치르고 [[프랑스]]의 반 영국 정책에 협조하였으며, 이 시기 미국은 영국이 서양의 패권을 잡는 걸 견제하는 입장이었다. [[7년 전쟁]] 패전으로 [[퀘벡]] 등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영토를 뺏기고 [[나폴레옹]] 시절 돈이 없던 [[프랑스]]는, [[영국]]보다는 자신들에 더 우호적인 미국에 [[루이지애나]]를 싼값에 팔아넘겼고, [[오리건 국경 분쟁]] 당시도 미국은 영국을 견제하려던 프랑스와 알래스카 점령 이후 [[캐나다]] 서쪽 해안선을 따라 남진하던 [[러시아]]와 공조하여 오리건 분쟁 당시 영국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러시아가 [[크림 전쟁]] 패전 직후 알래스카를 미국에 판 건 땅보단 재정에 관심이 많았던 타 국가에 비해 명백한 운명 운운하며 아메리카 영토 점령 및 영토 확장에 관심이 많은 미국이 구매 욕구가 높을 거라는 예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차피 영국령 캐나다에 알래스카를 뺏기느니 영국과 사이가 안 좋은 미국에 팔자는 계산이었다. 1895년 영국[* [[가이아나|영국령 기아나]].] - [[베네수엘라]] 국경분쟁 때는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며 충돌할 뻔 했으나, 영국이 한발 물러서며 일단락되었다. 물론 미국 쪽에서만 영국을 견제하고 도발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남북전쟁]] 때, 영국은 [[남부연합]]을 지원하는 것을 몰래 획책했었다. [[미국 독립 전쟁]] 때 열세였던 미국을 프랑스가 원조하여 미국의 독립이 일어났듯이, 남부가 아무리 열세였어도 초강대국인 영국이 각 잡고 지원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지 아무도 모른다. 영국이 타국의 내전 개입까지 고려했던 것에는 ''''미국이 너무 커버리기 전에 밟아놔야 한다''''는 정치가들의 생각이 한 몫 했고, 실제로 미국이 분열했다면 오늘날의 초강대국 미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국의 개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앨버트 공]]의 사망으로 인한 조문 정국으로 국내 상황이 어수선했고, 미국 남북전쟁의 규모가 [[크림 전쟁]] 쌈싸먹게 대규모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무엇보다 30여년 전에 [[윌리엄 윌버포스|윌버포스]]의 활약으로 자국에서 노예제를 폐지했으면서 타국의 ‘노예제 유지’를 위해 군사 개입을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영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을 때려버려 완전한 도덕적 명분 우위를 점했고, 전쟁은 예상대로 북부의 우세로 흘러가 미국의 재통일로 이어진다. 영국 입장에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향하는 길을 방해할 마지막 기회를 놓친 셈. 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좋아진 건 양차 세계대전부터지만 청일 전쟁 이후부터는 미영관계가 좋아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이후까지 고립주의를 표방하던 미국은 [[흑선 사건]]을 시작으로 일본이나 아메리카 바깥 세계에 진출을 시도하는데, 러시아가 [[청일전쟁]] 이후 프랑스, 독일과 [[삼국간섭]]으로 [[영일 동맹]]을 압박하자 미국이 자신들의 아메리카 바깥 세계 진출을 위해 일본을 지지한 시점에서 미국과 영국은 동맹이 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전성기에 이르렀던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임을 자처하며, 전 세계에 자국의 힘을 과시한 반면 미국은 19세기 말이 돼서야 [[미국-스페인 전쟁]] 등을 통해 뒤늦게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 시기 미국의 강해진 위상을 상징적인 사건들은 대표적으로 영-미 베네수엘라 위기, 영불의 대미 파나마 운하 양보, 미서전쟁, 영국의 알레스카 국경분쟁 양보, 결정적으로 [[러일전쟁]]과 [[포츠머스 조약]]을 뽑을 수 있다. 영국은 [[먼로 독트린]]을 인정하였고, 이를 거치며 20세기 초 부터 [[서반구]]에서 [[영국]]의 역할이 점차 희미해져가게 되었다. [[미국]]은 [[대영제국]]과 더불어 당대 [[초강대국]]의 패권경쟁격인 [[그레이트 게임]] 대러전에서 [[일본]]의 채권을 사주는 등 일본/영국을 지원하였으며, 이후 당대 열강인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을 중재해 핵심적인 유럽열강들의 지정학적&군사적 이해관계를 관리하는 위치까지 맡게 된다.[* [[미국]]의 세력이 더 이상 [[서반구]]에 그치지 않게 된 사건이다. 이후로도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산업, 재정, 군사적으로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많은 관심을 가질 정도로 외교 무대에서의 입지가 올라간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미국의 [[산업화]]가 상당수 진행되면서[* 이 시기에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경제력이 영국 본토를 뛰어넘게 되었지만[* 미국의 경제 규모가 [[대영제국]] 전체를 확실히 뛰어넘는 것은 1차대전 이후의 일이다.] 여전히 경제력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영국]]이 우위에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