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영전쟁 (문단 편집) == 영국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이유 == 당시 영국은 [[세계]] 최강 군사대국이며 육군과 해군은 양과 질 그 모든 면에서 미군을 크게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니 전쟁을 해도 영국이 이기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영국은 승리하지 못했는데, 이는 대내외적으로 영국이 전쟁을 수행할 여건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대내적으로 영국은 앞서 말했다시피 [[나폴레옹 전쟁]]에서 소모된 막대한 인력과 전비로 인해 애초에 미국과 또 다시 전쟁을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이와중에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대중]]과 [[병사]]들의 곪아가는 불만과 [[장교]]에 대한 [[프래깅]] 행위는 폭주하고 있었으니 영국 입장에선 외부의 적보다 내부 관리부터 신경써야 할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포섭해 미국과의 전쟁에 요긴하게 써먹으려고 했던 것도 애초에 이들의 숫자가 적고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있어 전쟁을 결정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수단은 되지 못했다. 대외적으로도 매우 넓은 미국 [[동부]] 지역 일대를 육해군으로 평정하고 봉쇄하는 것은 [[총력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애초부터 무리였고 그동안 [[유럽]]에서의 정규전에 익숙했던 영국군이 [[미국]]식의 [[게릴라]]전에 익숙하지 못했던 것도 전쟁에 악영향을 끼쳤다. [[컨스티튜션]]이 프리깃 답지 않은 거대한 함체에 고화력의 무장을 갖춰 단함전투에서 영국 프리깃을 압도한 것도 그렇거니와 [[전열보병]] 전투에 익숙했던 영국군 [[지휘관]]들이 미국에선 독립전쟁 시기 대륙군을 계승한 미군의 게릴라식 저격전술에 말려들어 가장 먼저 자기들이 저격을 맞고 죽는 바람에 지휘체계가 붕괴된 것도 큰 타격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지휘관 저격행위가 비신사적인 행위로 여겨졌다. 장교들은 [[귀족]]으로 분류되어서 몸값을 지불하거나 포로 교환용으로 생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실제로도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그래서 장교가 전사한다면 일부러 작정하고 죽이고 쏘는 것이 아니라 보통 눈먼 총탄에 전사하는 경우였다. 유럽 내의 전쟁에서는 평민들도 귀족을 죽이기보다 생포하려고 들었는데 귀족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이 아니라 귀족 포로는 공훈이고 돈이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신분제]]가 남아있던 유럽에서나 통하던 이야기고 (명목상) [[계급]], 정확히 귀족계급이 없고 포로를 돌려보내고 돈계산을 받기보다 당장의 국가 멸망의 위기가 눈앞에 닥쳤던 미국에선 통하지 않는 이유였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독립전쟁 당시에서 영국군 장교를 저격해 죽이곤 했다. 지휘관을 죽여 지휘체계를 무너뜨리는 현대적 저격 개념은 훗날 [[남북전쟁]]에서도 계승되어 [[휘트워스 소총]]을 사용한 [[저격수]]라는 전문 보병 병과가 생겨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