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탄니 (문단 편집) == 역사 == 미탄니는 [[히타이트]]의 서아시아 석권 이전인 기원전 15세기에 [[시리아]]와 [[아나톨리아]] 동남부, [[이라크]] 북부를 지배한 대국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진출을 노리던 [[투트모세 3세]]의 [[이집트 신왕국]] 군대와 자주 격돌하였다. 이를 통해 미탄니가 [[카데시 전투]]보다 앞서서 이집트와 [[세계대전]]을 치렀다고 볼 수도 있는데, 기록이 부족해 미탄니와 이집트 사이의 전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결국 이집트 제18왕조는 미탄니를 시리아의 패권국으로 인정해 동등한 외교상대로 교류하게 됐고, 강력해진 히타이트를 견제하기 위해 양국은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이집트와 미탄니 양측이 서로에 대한 견제로 지쳐있을 때, 기원전 14세기 아나톨리아 고원 중부에서 힘을 기른 히타이트의 왕 [[수필룰리우마 1세]]가 미탄니를 공격하여 수도 왓슈카니가 약탈당했고, 미탄니는 서부의 영토를 대부분 잃고 동쪽으로 축소되어 히타이트의 속국[*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의 편에서 싸운 소국 명단에 미탄니가 있다.]처럼 되었으며 내분을 겪었다. 한편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시리아]]의 아다드-니라리 1세가 미탄니의 수도를 침공하고 약탈으며, 결국 샬만에세르 1세가 미탄니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이후 미탄니는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했고, 기원전 1260년경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후 그들의 영토는 수바루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아시리아 제국이 지배하였다. 미탄니를 구성하던 후르리인들은 남하하여 [[아람]]인과 융화되어 고대 [[아시리아인]]에 동화되었다.[* 현대 [[시리아인]]은 아시리아인에 그리스계와 다량의 아랍계, 그리고 일부의 튀르크계가 섞인 혈통이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구의 [[다후크]] 주에 있는 저수지가 가뭄으로 마르자 미탄니 시대의 왕성 유적이 드러났다고 한다. [[https://news.v.daum.net/v/20190703133603694?d=y|#]] 보존 상태가 좋아서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보였으나 다시 물이 차오름으로써 발굴 진행이 멈추고 다시 수장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