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터 (문단 편집) === [[자오선]]의 측정 === [[http://www.french-metrology.com/en/history/metre-adventure.asp|내용 출처]] [[https://www.google.com/maps/d/viewer?mid=zDhjkYLOM-ZE.kxYSTw2yTnkQ&hl=en|이미지 출처]] 정의하기로는 북극에서 적도까지 거리의 천만 분의 1이라 하였으나, 당시로서는 인공위성은커녕 비행기도 없었고 바다 위에서 동원할 정밀한 측정도구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실제 [[자오선]] 길이를 측정할 때, 적당히 자오선의 일부를 추출하여 육지 위에서 측정하는 방법으로 대체하였다. [[파일:fOvsgEH.png]] 위 그림과 같이 [[됭케르크]](가장 북쪽에 있는 파란색 표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경로의 대부분이 프랑스 영토 남북을 가로지르는 두 지역을 기준으로 떨어진 거리와 위도 차를 측정하고 [[자오선]]의 길이를 유추하였다. 측정참가자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쪽(Delambre 담당)은 됭케르크에서 로데(Rodez, 연두색 표시)까지, 다른 한쪽(Mechain 담당)은 바르셀로나부터 로데까지 맡았다. 측정과정에서 육지 위 랜드마크를 군데군데 선정하고 [[삼각측량]]으로 거리를 계산하였다.(각도 측정에 사용한 도구가 위 출처에 있다.) 사실 자크 카시니(Jacques Cassini)가 이미 1718년 됭케르크에서 콜리우르(Collioure, 바르셀로나의 바로 위 붉은색 표시에서 살짝 남쪽 해변)까지 거리를 재고자 삼각측량을 이용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사이 [[프랑스 혁명]] 등 굵직한 사건으로 기존에 설정했던 랜드마크 상당수가 철거 혹은 소실되어, 다른 랜드마크를 골라야 했다. 더욱이 측정 과정에서 도구가 망가지는 등 각종 크고 작은 일을 겪기도 했다. 한 예로 거리와 각도 측정의 기준점을 정하기 위해 하얀 깃발을 세웠는데, 하얀색 깃발이 왕당파를 의미해서 잡혀간 일도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천 km에 이르는 거리를 측정하기란 매우 험난한 과정이었다.[* 물론 고대에 [[에라토스테네스]]도 비슷한 방법으로 길이를 쟀지만, 미터 원기를 제작하고자 측정하는 작업은 매우 정밀해야 하므로 사정이 판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