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주당(1955년) (문단 편집) == 구파와 신파 == || '''{{{#fff 구파}}}''' || [[신익희]], [[조병옥]], [[김도연(1894)|김도연]], [[김준연]], [[윤보선]], [[유진산]], [[윤제술]], [[백남훈]], [[허정]], [[김영삼]] || || '''{{{#fff 신파}}}''' || [[장면]], [[곽상훈]], [[현석호]], [[오위영]], [[박순천]], [[이철승]], [[정일형]], [[한근조]], [[김영선(1918)|김영선]], [[김대중]] || 민주당 구파는 구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 계열의 인사들이다. [[전라도]](넓게는 기호 지방까지)의 토착 [[지주]] 출신 정치인들이 다수였던 민주당 구파는 일제강점기부터 당대의 정치엘리트로서 민족지도자적 위치를 차지해온 그룹이었다. 1955년 사망해 민주당 창당에 합류하지는 못했지만, [[김성수(1891)|김성수]]는 소위 '민주당 구파 스타일' 정치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에 반해 민주당 신파는 민주당 구파보다 10살 연하의 비주류 신진 소장 세력으로, [[장면]]을 위시하는 [[평안도]]·[[흥사단]] 계열의 인사들과 1952년 [[부산정치파동]] 이후 합류한 [[자유당]] 탈당파[* [[김영삼]]은 자유당 탈당파 출신임에도 [[유진산]], [[조병옥]]과 친분이 있어서였는지 신파가 아닌 구파로 분류되었다. 참고로 [[김대중]]은 [[장면]]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해서 [[정일형]]과 가까웠던 신파였다.], 관료·법조인 출신 인사들의 연합이었다. 이 야당의 두 그룹은 교육수준, [[이승만]]에 대한 적대감, [[의원내각제]]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욕망,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장려하는 경제관을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많지 않았다. 교육을 받은 장소, 종교, 독립운동과의 유대관계, 계급, 경력 및 직업, 부의 근원, 출신지, 미국과의 친밀감 등에서 두 그룹은 차이를 보였다. 구파는 '''구파동지회'''라는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였으며, 분당파와 협상파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분당파는 [[신민당(1960년)|신민당]]을 창당하였고 협상파는 신파로 넘어가 합작파가 되었다. 신파는 '''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였고, 노장파, 소장파, 합작파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소장파 의원 32명이 '''신풍회'''를 조직하였고, 합작파는 '''정안회'''를 조직하였다. 노장파에서도 비주류로 구성된 중도파는 신풍회와 협력하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