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주자유당 (문단 편집) === [[3당 합당|창당 배경]]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3당 합당)] ||<-4> '''{{{#003990,#fff 민주자유당}}} 창당에 참여한 정당''' || || '''[[여당|{{{#363636,#fff 여당}}}]]''' || [[민주정의당|[[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height=14]]]][br]{{{#fff (127석)}}} ||<|3> → ||<|3> [include(틀:민주자유당)][br]'''{{{#fff (217석)}}}'''[* 127+59+35=221석이지만 통일민주당의 [[노무현]], [[이기택]], [[김광일]], [[김정길(1945)|김정길]], [[장석화]] 의원과 신민주공화당 [[김현#s-1.1]] 의원이 참여하지 않았고 무소속 [[유한열]], [[정몽준]] 의원이 입당하며 최종 217석이 되었다.] || ||<|2> '''[[야당|{{{#363636,#fff 야당}}}]]''' || [include(틀:통일민주당)][br]{{{#fff (59석)}}}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br]{{{#fff (35석)}}} || 기존 여당이던 [[민주정의당]]은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 야권 분열로 정권 유지에는 성공했지만, [[1988년]]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는 전체 299석 가운데 125석만을 확보할 수 있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이루어진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에 대한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5공특위)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 등에서 탈탈 털리면서 [[민주정의당]]은 [[야당]]과의 합당을 통해 정국을 돌파하려고 했다.[* 실제로 84년도부터 민정당에서 자민당을 모델로 한 '[[2000년대]] 장기 집권 계획'을 계획하기도 했다고.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97|#]])] 처음에 민정당은 4당 합당을 추진했다. 민주정의당이나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은 지역 연고 및 인물만 다를 뿐 모두 이념이나 정책에 있어서 거의 차이가 없는 보수적인 정당들이니 이들을 모두 합당하여 거대한 보수정당을 만들고, 이에 반발하는 평민당, 민주당 계열의 인사와 기타 재야 인사들이 뭉쳐 진보정당을 만들면 진보정당이 아무리 선전해봐야 다수당이 될 수 없는 [[일당우위제|거대 보수 정당 중심의 1.5당 구도]]가 생성되어 안정적으로 장기집권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노태우]]가 당시 제1[[야당]][* 당시 70석.]인 [[평화민주당]]과 합당을 제의했을 때 [[김대중]]은 거부했다. 하지만 [[김영삼]]과 [[김종필]]은 찬성하여 결과적으로 평민당을 제외한 세 당끼리의 합당이 되었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와 야당의 두 대표는 전격적으로 합당을 선포했다. [[통일민주당]]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났지만, 김영삼의 일대일 설득 끝에 대부분 합류했고, 이탈자는 5명([[이기택]], [[김광일]], [[김정길(1945)|김정길]], [[노무현]], [[장석화]])에 그쳤다. [[신민주공화당]]에선 [[김현#s-1.1]] 한 명만이 합류를 거부하였다.[* 김현은 이듬해인 1991년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에 합류한다.] 여기에 무소속이었던 [[정몽준]], [[유한열]] 2명이 참여하면서 민주자유당은 299석 가운데 217석(민정 127 + 민주 54석 + 공화 34 + 무소속 2)을 차지하는 초거대 여당으로 출범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