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주자유당 (문단 편집) ==== 당명을 둘러싼 잡음 ==== 민주자유당이란 이름은 우연찮게도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과 어순이 반대인데다 유력 [[정당]]간의 합당[* 더구나 자유(보수) + 민주의 구도라는 점이 그렇다.]이라는 형성과정의 유사성[* 한국의 경우는 평민당, 일본의 경우는 [[일본사회당(1945년)|일본사회당]]이 부상할 때 이루어졌다.], 의석의 과반을 넘는 집권 거대 [[보수주의|보수]] [[정당]]이라는 점 등이 비슷했다. 이 때문에 이름을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에서 따왔다는 속설이 야권에서 돌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영삼 총재의 경우 신당 창당 과정에서 [[일본]]의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을 여러 번 강조했다고 하나,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외국 나가서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부정하기도 했다.[* 90년 2월 9일자 동아일보] 한편 김종필은 이미 [[민주공화당]] 시절부터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과 교섭이 잦았던데다 자민당의 정국 안정 수완을 높이 샀기에 일본 자민당의 예를 여러차례 강조했다. 민자당의 정치적 라이벌인 [[김대중]] 총재는 [[노태우]] 대통령의 말실수[* 당시 초대 총재 겸임. 첫 전당대회 날부터 실수로 '''민주자유당을 자유민주당이라고 불렀다'''... (90년 5월 12일자, 5월 7일자 동아일보, 1990년 5월 7일자 매일경제 참조)]를 두고 같은 해 2월 연설에서 [[10월 유신]]도 [[메이지 유신]]을 따라하더니 신당도 그렇다면서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 한국 지부라고 하지 그러냐고 비꼬았다. 결국 실증성보다는 이런저런 정황상의 심증이 속설을 부풀린 셈이다. 사실 민주자유당에도 민정계 출신이 대다수 존재했는데, 이 때만 해도 김영삼 후보를 지지한 민정계 인사들과 공화계 인사들이 있었다. 사실 [[자유]]와 [[민주]]는 별로 특이하다고 할 것도 없이 전통적으로 한국 정당명에 흔히 붙었던 단어였다. 실제로 이미 [[1960년대]]에 야권 계열에서 창당된 같은 이름의 [[자유민주당(1963년)|자유민주당]]도 존재했던 데다 민주자유당 이후에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쪽도 어감이 비슷하긴 마찬가지. 또 초창기 창당 과정에서는 민주통일당 등의 다른 당명이 거론되기도 했다. 더구나 그렇게 의미심장한 이름이라면 불과 창당 5년, 대선 3년만에 바꿀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사실 공화당, 민정당이야 그렇다 치고, 민자당의 정당사 5년은 최근의 정당사 가운데서는 '그나마' 나름 오래간 것이긴 사실이다. 또 그 반면으로 [[한나라당]]이나 [[자유민주연합]]이 10년을 넘는 역사를 가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심오한 뜻을 품은 당 의미도 아니었다.], 반면 그런 민자당을 "김영삼당"[* 1992년 당시 김영삼 후보의 선거 슬로건이 '신한국 창조'였다.]인 [[신한국당]]으로 바꾼 김영삼이 더 압박이란 해석도 있다. 노태우 회고록 등에서 보듯, 민정계 인사들은 민자당 창당을 정치 안정의 초석으로 보았다. 그래서 훗날 민정계, 공화계를 축출하고 민자당이라는 '좋은 이름'을 바꿔서 총선과 대선에서 졌다라고까지 해석했다. 미련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 김영삼 대통령으로서는 정당명 개명은 민정계를 축출하고 민주화를 추진하며 자신의 슬로건인 "신한국 창조"를 상징하는 당연한 마무리 작업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정당 자체가 한국판 자민당을 꿈꾼 노태우, 김종필 등과 김영삼의 [[동상이몽]], [[오월동주]]였을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