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밀라노 (문단 편집) == 역사 == 최초에는 [[켈트족]]의 한 일파인 인수브레스족이 기원전 600년경 건설했던 도시이다. 도시를 건설한 사람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에 따르면 갈리아의 왕 암비카투스가 보낸, 암비카투스 왕의 조카 벨로베수스로, 벨로베수스가 무리를 이끌고 와서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로마 공화정 시절인, 기원전 222년 당시 집정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가 군대를 이끌고 인수브레스족을 제압하고 로마가 점령하면서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됐다. 이때 도시를 지배하던 인수브레스 족의 성주가 로마를 따르겠다고 하면서, 로마에게 자치권을 얻고 실질적인 이탈리아 동맹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면서 도시 이름 역시 메디올라눔([[평야]] 한복판)이라는 라틴식 이름을 붙여지게 됐다. 제정 시대가 된 뒤, 도시의 위치 특성상 알프스 산맥과 가깝고, 갈리아 지방과도 인접해 있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양아들로 후일 2대 황제가 되는, [[티베리우스]]가 젊은 시절 밀라노와 그 근처의 포 강 유역 마을에 머무르면서, 게르마니아 전쟁을 후방에서 준비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 후 북부 이탈리아의 중심지로 꾸준히 발전하면서, 도시가 규모가 커지게 됐다. 그러다가 기원후 [[286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서로마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313년]]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이곳에서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중요 선언이다. 밀라노는 [[402년]]에 [[라벤나]]로 수도가 옮겨질 때까지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밀라노는 오도아케르의 지배를 받다가 곧 동고트 왕국에 흡수되었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고토 수복 전쟁으로 다시금 로마 제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뒤어어 들어온 랑고바르드족이 세운 랑고바르드 왕국에 의해 569년경 다시금 함락되어 랑고바르드 왕국의 주요 도시로 기능한다. 이후 [[774년]]에 카롤루스가 랑고바르드 왕국을 정복하면서 밀라노는 [[프랑크 왕국]]에게 항복하고,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서기 [[961년]]에 [[오토 1세]]에 의해 롬바르디아 지방과 리구리아 지방을 한데 묶은 [[제노바]] 변경백령이 창설되었다. 그 뒤에는 에스테 가문[* 분가로 [[독일]]의 [[벨프 가문]]이 있으며 벨프 가문의 분가인 [[하노버 왕조|하노버 가문]]이 현 [[영국 왕실]]의 조상이 된다.] 아래에서 [[1183년]] 코무네가 성립되었고, 산업, 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1395년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에 의해 [[밀라노 공국]]으로 격상되었다. 국제 외교에도 꽤 영향력을 끼쳤는데, [[북유럽]]에서 [[이탈리아]]로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중요 도시인 베로나와 밀라노 중 베로나가 당시 이탈리아 제1의 대국으로 여겨졌던 [[베네치아 공화국]]에 편입되면서 이탈리아를 차지하려는 유럽 세력[* 주로 프랑스와 스페인-독일의 황제 세력]들이 이탈리아로 내려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산업적으로 융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1세]] 재위 시절의 [[잉글랜드 왕국]]보다 밀라노 공국의 수입이 많았다.] [[16세기]] 이후부터는 여러 외세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다. [[1447년]] 밀라노 공작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암브로시아#s-3|암브로시아 공화국]]이 들어서자 이웃한 [[사보이아 공국]]의 [[루도비코(사보이아)|루도비코]]가 밀라노를 노렸으나, 곧 [[용병]]대장 출신인 [[https://ko.m.wikipedia.org/wiki/%ED%94%84%EB%9E%80%EC%B2%B4%EC%8A%A4%EC%BD%94_1%EC%84%B8_%EC%8A%A4%ED%8F%AC%EB%A5%B4%EC%B0%A8|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필리포의 딸 마리아 비앙카 비스콘티와 결혼하여 암브로시아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다시 군주정으로 회귀했다. [[1499년]] 밀라노 공국의 계승권을 주장한 [[프랑스 왕국|프랑스]]가 밀라노를 침공하여 처음에는 프랑스가 밀라노를 합병해 프랑스령 북이탈리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곧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의 반격으로 스포르차 가문이 복귀했다. [[1535년]] 스포르차 가문의 마지막 공작 프란체스코 2세가 사망하면서 밀라노 공국은 [[카를 5세]]를 거쳐 아들인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에게 상속되었다. [[1714년]]까지 [[스페인 제국|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합스부르크 제국]]이 밀라노를 획득했다. [[근세]]에 들어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점령당했다.[* 이때 [[베를린]]에 이어서 나폴레옹이 다시 한 번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영국]]을 경제적으로 봉쇄시키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선포한 장소가 밀라노이다.] 1815년에는 다시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 대공국]]->[[합스부르크 제국]](1526년)->[[오스트리아 제국]](1804년).]령이 되었고, 오스트리아 [[카이저|황제]]가 국왕을 겸하는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에서 [[독일어]] 명칭인 마일란트로 불리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 [[1848년]]에는 [[1848년 혁명|혁명]] 분위기에 힘입어 [[사르데냐 왕국|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편입하려는 독립 운동을 일으켰으나 국왕 [[카를로 알베르토]]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오스트리아 제국군]] 사령관 [[요제프 라데츠키]]에게 패배하며 좌절되었고, 11년 뒤 벌어진 [[이탈리아 통일 전쟁]]으로 1859년 빌라프란카 조약이 체결되어 [[사르데냐 왕국|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영토로 합병되었다. 1861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이탈리아 왕국]]을 선언하면서 롬바르디아의 주도가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uremberg_chronicles_f_72r_1.png|width=500]] [[1493년]]에 묘사된 밀라노 모습 경제적으로는 [[12세기]]에는 [[서양 갑옷]]을 만드는 산업이 번성했는데 밀라노제 갑옷은 당시부터 최상품으로 대우받았다. ~~괜히 밀라노가 패션의 중심이 된 게 아닌 거다~~ 이 시기에 관개가 시작되어 [[농업]]에 기여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롬바르디아 평원을 비옥하게 한다. 13~[[14세기]]에 [[양털]] 무역이 번성하여 [[15세기]]에는 [[비단]] 생산으로 이어져 번성하였다. [[16세기]]에는 [[베네치아]]나 [[피렌체]]처럼 사치품의 생산이 발달하고 중시되어 국제적 명성을 떨친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밀라노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다. [[기업]] 1만 2천여 개, 전시장 8백여 개소, 의류매장 6천여 개소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