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나나맨 (문단 편집) === 2000년대의 행보 === 라이브 무대에서 텔레비전 방송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2003년 웃짱난짱의 우치무라가 진행하고 [[사마~즈]] 등이 레귤러진으로 있는 '우치무라프로듀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오기야하기]], [[게키단 히토리]]등과 함께 [[와카테게닌]]으로써 비정기적으로 출연하며 지명도를 높여갔다. 그러다가 2005년도에는 '''와카테게닌 붐'''이 일어난다. 하지만 타카 앤 토시, 블랙 마요네즈, 오기야하기 등 또래 콤비들이 조명을 받는 가운데 바나나맨은 별로 눈에 띄지 못한다. 소속사 선배 게닌이나 연예인도 없었고, 조언을 받거나 하는 등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 바나나맨은 스스로 현장 경험을 쌓아가며 시행착오를 반복해갈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방송 분위기를 금방 파악하고, 방송에서 요구하는 것에 대한 대응력을 습득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바나나맨이 눈에 띄기 시작한건 2006년부터이다. 관동 게닌을 대표하는 [[톤네루즈]]의 방송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입니다'에는 레귤러 수준으로 불려나가기도 했고, [[다운타운]], [[사마~즈]], [[아메아가리 결사대]] 등 거물급 게닌들이 다수 레귤러로 있는 [[링컨(TBS)|링컨]]의 '프렌들리 다운타운'이라는, 다운타운과 친해진다는 기획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링컨의 게스트로써 자주 출연하게 되기도 하였다. 히무라는 특유의 캐릭터성으로 개인으로 출연해서 박장대소를 일으키곤 했다. 특히 히무라는 몰래카메라에 잘 걸리는 게닌으로 활약했는데, 2006년 한해동안 몰래카메라에 총 24번이나 걸렸다. --한달에 두번 꼴로 걸린 것-- 바나나맨 스스로는 링컨에 출연하며 다운타운 등에게서 '이런 때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좋다', '이 때는 다같이 웃는 것' 등 방송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또 이러한 초기는 히무라의 캐릭터성에 시타라가 눈에 띄지 않던 시기. 바나나맨 중 히무라 아닌 쪽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2006년도에는 안잣슈의 --와타베가 아닌 쪽-- 코지마와 함께 '''특징 없는 게닌'''이라는 주제로, 2008년도에는 [[히나단 게닌#s-4.4|가야 게닌]]이라는 주제로 [[아메토크!|아메토크]]에 나갔을 정도.[* 하지만 2010년도부터는 시타라도 위상이 높아져서 링컨에서 시타라가 어느 기획의 준레귤러 수준의 역할을 맡고 히무라는 그 기획의 게스트로 나오자, 링컨 멤버들이 '바타'(잘 나가는 사람에게 얹혀서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라고 놀리기도 했다. 곳도탕에서 바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도 자신이 시타라 중심의 방송에 바타처럼 출연하곤 했다는 말을 했을 정도. 최근에는 이러한 차이가 별로 없다.] 2007년은 많은 방송에 불려나가며 선배 게닌들에게 '너희 브레이크 한 거 아니냐'라는 농담을 들을 정도였는데, 별개로 시타라에게 인생 3대 사건 중 하나가 벌어졌던 년도이다. 2007년 3월, '''자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자신의 방이 전소한다.''' 원인은 다 끈 줄 알았던 담뱃불(...).[* 히무라는 매니저에게 시타라의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 몰래카메라 허술하네'라고 생각했다고. 촬영 전에 만나고 나서야 진짜라는 걸 알았다.] 소중한 물건들이나 DVD, 라이브 대본이고 콩트 대본이고 뭐고 전부 불타버렸다고. 하지만 바로 6시간 후 개그 경연대회 '이로모네아' 촬영에 임한다. 이로모네아의 의상인 정장도 불타버려서, 둘이 함께 턱시도로 새로 맞춰입고 등장했다. 그리고 경연에서 그 화재를 이용한 네타로 이로모네아에서 처음으로 100만엔의 상금을 타가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시타라 오사무]] 항목 참조. 또 이 '이로모네아'에서 바나나맨은 첫번째 주자를 자주 맡았다. 방송 관계자는 바나나맨을 항상 첫번째 주자로 부탁하면서, 수록 전체의 분위기가 결정되는, 관객의 분위기도 잡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역할인데도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아무튼 시타라는 이 화재로 화제가 되어, 이것을 소재로 괴롭힘 받는 캐릭터로 --잠깐이지만-- 떠올랐었다. 또 시타라는 2007년 게닌 요리왕 결정전의 초대 챔피언이 되는 등의 활약을 펼친다. 2008년에는 [[킹 오브 콩트]]의 결승에 오르지만 버팔로 고로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이것에 대해서 결승전 우승자 결정 방식에 대해 작은 논란이 있었는데, 아래 여담 항목 참조.) 이후로는 스스로 쌓아온 방송 경험들로 여러 방송에서 활약한다. 시타라는 막나가는 MC로써의 재능을 발휘하고[*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룰을 바꿔버린다던가, 도S적인 성격으로 출연자들을 괴롭힌다던가.], 히무라는 부사이쿠 캐릭터와 온 몸을 던지는 개그로 활약한다. 그리고 2010년경, 일본 버라이어티 계에서는 변화가 일어났다. 바나나맨이 잘 활약할 수 없었던 오와라이 개그 방송의 시대가 끝난 뒤 토크의 시대가 찾아왔고, '''바나나맨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