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다(가수) (문단 편집) === 1986~1991 초등학생 === 도창초등학교에 다녔다. 바다가 태어난 뒤, 바다 아버지는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부산에서 큰 나이트 클럽을 운영했다고 한다. 창으로는 돈벌이가 안 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지만, 클럽을 운영하면서 술과 담배 등을 하면서 건강이 안 좋아졌고, 결국 사업 실패와 건강 악화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바다가 초등학교 1학년 되던 해 경기도 시흥시 도두머리로 이사를 가게 됐다고 한다. 바다의 기억에 따르면, 웃풍이 심하고 비가 새는 허름한 집에서 살게 됐지만 집 밖에 나가면 마음껏 뛰어놀 대자연이 펼쳐져 있어서 매일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정서적으로는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바다의 풍부한 감수성과 넉넉한 마음가짐은 자연과 함께한 어린 시절이 영향을 준 것으로도 보인다. 비가 엄청 오는 날에도 산을 넘어서 학교에 다녔는데,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다는 산을 넘어서 학교를 다니는데 하나도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산 타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고 한다. 또, 겨울이 되면 산에 가서 직접 나무를 해와서 난로를 피웠는데, 다른 여자아이들은 힘들다며 나무를 조금밖에 못해왔지만 바다는 웬만한 남자아이들보다 더 많은 나무를 해왔다고 한다. 옆집에 꿩 5,000마리를 키우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매일 30마리씩 죽어서 12마리를 묻어준 적이 있다고 한다. 가수 신해철이 리드보컬로 있었던 N.EX.T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틀어 놓고 꿩들을 묻으며 꿩들이 날아가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특히 예수님의 12사도를 생각하며 '꼭 가수가 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며 꿩들을 묻어줬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성희처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처음으로 자신이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MBC 《무한도전》 논두렁 디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넘치는 끼를 주체를 못할 만큼 흥이 넘치는 아이였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지루해 할 때마다 교실 앞으로 나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부터 시작해서 옷걸이 춤, 개그맨 흉내 등 원맨쇼를 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 인기였던 〈회장님 회장님〉의 딸랑딸랑과 〈네로 25시〉의 최양락 흉내, 순악질 여사 흉내도 똑같이 냈는데, 늘 까만 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자 눈썹을 붙이고 남자애들을 바꿔가며 앉혀 놓고 '음매 기 죽어~, 음매 기 살어~'를 연발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바다가 가요계의 요정 [[S.E.S.]]로 데뷔하자 동창들 모두 놀랐다고 한다. 당시 전교에 반이 2개밖에 없어서[* 80년대 말은 서울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서 한 학교에 10여개의 학급이 기본이요 교실당 60명이 넘는 학생이 우글거려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하는 등, 콩나물시루 과밀학급이 문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반이 둘 뿐이었을 정도의 시골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 때는 시흥시가 아니라 시흥군이었다.] 체육대회를 하면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긴 반이 진 반 애들한테 약을 올려서 큰 사건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중 바다가 사건의 발단이 된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말싸움으로 놀리다가 바다가 욱한 마음에 먹고 있던 떡을 옆반 애한테 던지면서 순식간에 헬게이트가 열렸고, 과자랑 음료수, 실내화, 가방, 빗자루 등등 던질 수 있는 온갖 물건들이 날아다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놀이터에서 뺑뺑이 경쟁[* 뺑뺑이를 돌려서 안에 타고 있는 상대방 애들을 떨어뜨리는 놀이를 말한다.]이 붙은 적이 있었는데, 바다는 '절대 지면 안 된다'면서 뺑뺑이를 돌려댄 바람에 상대편 여자애 1명이 기절해서 나가 떨어진 뒤에야 게임이 끝났다고 한다. 바다가 9살 때부터 바다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일을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가족끼리 묏자리까지 보러 다니게 된다. 죽음을 앞둔 바다 아버지는 물려줄 재산도 없고, 그저 자식들이 알아서 살아갈 수 있도록 뭐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식들 중에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막내딸에게 뱃심을 길러주기 위해 매일 아침 바다의 배를 밟고(…) 서있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잠도 안 깬 바다의 배 위에 올라가 벽을 짚고 서 있었는데 바다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니까 화를 낼 수도 없고 그저 내장이 터지지 않게 있는 힘껏 배에 힘을 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2~3년이 지나고 배에 힘이 생기면서 나중에는 아버지가 벽을 안 짚고 서 있어도 견딜 만해졌는데, 초등학교 때는 견디는 것만 했고 중학교 때는 그 상태에서 소리내는 연습을, 고등학교 때부터는 그 상태로 창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S.E.S.]] 활동 당시에는 같은 멤버인 [[유진(S.E.S.)|유진]]과 [[슈(S.E.S.)|슈]]가 배를 밟아줬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의 병세는 양약을 끊고 청정한 산과 들에서 나는 풀뿌리와 나물 위주로 식단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완치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치료비 때문에 집도 없어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오히려 아버지가 죽음을 눈앞에 둘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가족 간의 사랑이 더 깊어졌고, 바다 어머니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식당에 다니면서 돈을 벌었지만 누구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식구들끼리 더 아끼고 챙겨주게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바다네 가족은 성당에 딸려있는 조립식 건물에서 살았다고 한다. 치료비를 대느라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집을 얻을 상황이 아니었던 바다네 가족에게, 아버지의 병이 나을 때까지 공소 앞 정원을 관리하며 지내라고 마을 측에서 배려해 건물을 내어준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을 포기했던 바다 아버지는 병이 조금씩 호전되면서 성당 관리 일을 맡게 됐고, 바다네 가족은 문을 열면 바로 성당을 바라보는 공간에 살면서 새벽에 미사 참례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성당 문을 열어주고, 성모 마리아 상을 닦고, 성당 청소를 하면서 지내게 된다. 이 같은 성당에서의 삶은 훗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에스메랄다]] 역을 연기할 때 큰 영감을 주게 된다. 바다는 성당에서 사는 7년 동안 매일 3시간씩 한겨울에도 속옷을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춤을 추고 노래 연습을 했다. 창, 가스펠, 가요 등 아는 장르는 전부 불렀는데, 특히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와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부르며 비브라토 연습을 했고, 춤은 거울이 없으니 근처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성당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서 췄다고 한다. 당시 성당 안에 약수터가 있어서 항상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떤 여자애가 매일 춤추고 노래를 하니까 이상한 사람이 산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잘 안 된다면 하느님이 없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까 제발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무대를 가졌다고 한다. 집에 불쌍한 유기견들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워낙 정이 많아서 버려지고 병든 강아지를 거둬 길러줬다고 한다. 나중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성당에 개를 버리고 갈 정도였는데, 고등학교 때는 개를 팔아 학비를 마련했다는 슬픈 사연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