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덴뷔르템베르크 (문단 편집) == 역사 == 오래전 이 곳은 [[게르만족]] 중 [[수에비]]족이 살던 곳이며, 특히 수에비족 중에서 알레만니 부족이 주로 살았던 곳이다. 수에비(Suebi)족에서 [[슈바벤]](Schwaben)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으며, [[프랑스어]]로 독일을 뜻하는 Allemagne은 알레만니족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도 이 주의 서남쪽 [[프랑스]]와의 국경지대는 알레만 지방이라 부른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496년]] [[클로비스]]에 패하여 [[프랑크 왕국]]에 복속되었고 이후 [[슈바벤]] 공작령으로 이어진다. 슈바벤은 [[동프랑크]], 독일의 [[부족 공국|5대 공작령]][* [[작센]], [[프랑켄]], [[바이에른]], [[로트링겐]]] 중 하나로 유래가 매우 깊은 곳이다. 이후 [[843]]년 [[베르됭 조약]]에 의해 [[동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독일 왕국]]을 거쳐 [[962년]] 성립된 [[신성로마제국]]의 5대 제후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슈바벤은 프랑켄 공국, 로트링겐 공국과 마찬가지로 분할 상속 등으로 여러 가문으로 쪼개지면서 점차 명맥이 끊겨 갔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한때 [[신성로마황제]] 자리를 세습했지만 영토가 작아서 제국을 장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금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문장도 이 가문의 문장을 그대로 따온 것. [[1268년]] 호엔슈타우펜 가문 단절과 함께 슈바벤 공작위의 명맥이 끊기게 되지만 [[1273년]] 슈타우펜 가문으로 단절된 황위에 오르게 된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는 한미한 자신의 가문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가문이 보유한 슈바벤 영지를 바탕으로 슈바벤 공작령을 다시 되살려고 공작령 영토 전체를 황제 직할령으로 두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 역시 슈바벤 내에서 영토 지분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뷔르템베르크 백작령, 바덴 변경백, [[스위스]] 연맹, 부르군트 공작령, [[호엔촐레른]] 백작령, 퓌르스텐베르크 백작령으로 조각난다. 특히 저 부르군트 공작령 때문에 훗날 프랑스와 피터지는 영토 분쟁이 생기게 된다. 뷔르템베르크 백작령과 바덴 변경백은 슈바벤 공작령의 제후령으로서 각각 [[1083년]]과 [[1112년]]에 설치되었다. 뷔르템베르크 백작령은 슈바벤 공작령이 사라진 후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며 [[1495년]] 공작위로 승격된다. 뷔르템베르크 가문 공작들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영지를 넓혀갔고 [[30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1803년]] [[나폴레옹]]에 의해 선제후가 되고 [[1806년]]엔 [[뷔르템베르크|뷔르템베르크 왕국]]이 성립된다. 이 왕국은 [[1871년]] [[독일 제국]]에 합류하나, [[1차 대전]] 패전 이후 몰락하며 뷔르템베르크에는 자유주가 성립된다. 바덴 변경백은 체링엔 가문으로 상속되며 프랑스 알자스 지방과의 국경지대로, [[바덴바덴]]과 [[카를스루에]]를 중심으로 성장해 나갔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호헨슈타우펜 가문에 충성하던 영주다. 이 지역도 [[오스트리아]]나 바이에른 령 영토와 함께 군소 영주령들이 난립했던 곳이고 바덴 지역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1803년]] 바덴이 선제후가 되고 [[1806년]] [[대공국]]으로 승격된 이후이다. 그 후 약 100여년의 시간 동안 [[독일 제국]] 안의 구성국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바덴 대공국은 [[1차 대전]] 패전 후 붕괴됐지만, 그 명맥은 이어져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독일]] 시기 내내 바덴은 주(Land)의 하나가 된다. 호엔촐레른 백작령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발상지로, 뷔르템베르크 공작령 남쪽에서 [[스위스]] 국경 일대이며, 결과적으로 뷔르템베르크 공작령의 영토가 되었고, 바덴 공작령 남쪽 스위스 국경의 퓌르스텐베르크 백작령도 바덴 변경백령에 흡수되었다. [[2차 대전]] 패배 이후 이 지역은 [[미국]]과 [[프랑스]]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되는데 하나의 주를 각각 한 나라가 점령한 것이 아니라, 뷔르템베르크와 바덴의 북부 지방은 [[미군]]이 점령하고, 남부 지방은 [[프랑스군]]이 점령하면서 북부 뷔르템베르크, 남부 뷔르템베르크, 북부 바덴, 남부 바덴 4개의 점령구가 생기게 된다. 이 점령구들이 세 개의 주를 구성했다. 북부 뷔르템베르크와 북부 바덴은 뷔르템베르크-바덴 주, 남부 뷔르템베르크는 [[호엔촐레른]] 지방을 합쳐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주, 남부 바덴은 (남부)바덴 주. 이것이 [[1952년]] 하나로 합쳐져 오늘날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중앙정부나 점령군이 무작정 밀어붙인 게 아니라 주민투표를 거쳐서 통합을 결정했다. 나머지 주는 통합을 찬성했지만, (남부)바덴만큼은 거세게 반발하여 이 통합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독일어]]판 [[위키백과]]의 바덴뷔르템베르크 항목에 나온 당시 지도를 보면 (남부)바덴 주가 옛 바덴 대공국과 바덴 연방주의 영토를 북부 일부 지역만 제외하고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뷔르템베르크는 남북으로 분할된 데다가 각기 북부 바덴과 호엔촐레른을 포함한 상태였다. 만약 뷔르템르크 지역만이 통합되고 바덴이 존속했다면, 남독일 지역은 [[독일 연방]] 당시의 바덴, 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이 영토가 조금씩 바뀐 채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형태가 되었겠지만, 이 헌법소원은 기각되었다.[* 문제는 이 북부 일부 지역이 옛 바덴 대공국의 뿌리인 [[바덴바덴]]과 [[카를스루에]]를 포함하는 지역이라는 것. [[미군]]점령지역에서 바덴이 차지하는 영역이 아주 작았음에도 굳이 주 이름에 바덴을 넣어서 뷔르템베르크-바덴이라고 붙인 이유가 이것이다. (남부)바덴은 엄밀히 말해 '''바덴 없는 바덴 주'''였던 것이다.] 이와 함께 [[오스트리아]] 땅이었던 곳 일부, [[프랑켄]] 지역이었던 것 일부, [[팔츠 선제후국]] 영토였던 곳들도 일부씩 조금씩 조금씩 함께 합병했다. 어차피 안 그랬다면 [[월경지]]가 너무 많아졌을 것이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