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로크 (문단 편집) === [[이탈리아]] === 이탈리아의 바로크 건축은 1585년 [[사코 디 로마]] 이후 황폐화된 로마의 재건 작업을 통해 출발하였다. 종교 전쟁이 유럽을 휩쓸고 있는 당시의 상황에서 비뇰라, 포르타 등의 건축가들에 의해 로마는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다. 로마의 4대 [[교황]] [[대성전]] 중 [[성 베드로 대성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성당은 건축 시작에서 완성까지 150년(...)이 걸린 지라 르네상스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다양한 건축 양식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 대성전]], 그리고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라테라노 대성전]]이 이 시절에 재건축되어 현재 우리가 아는 바티칸과 로마의 구시가지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들은 당시까지 유행하던 매너리즘을 타파하고, 로마 고전주의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당시 실추되었던 [[가톨릭]]의 권위를 되살리고자 극적이고 흥겨운 연출을 위해 화려한 바로크 특유의 양식을 정립하였다. [[베르니니]]와 [[보로미니]]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전성기에는 이 둘이 라이벌 구도를 이루면서 다양한 건축물을 내놓았다. [[성 베드로 광장]]으로 대표되는 [[베르니니]]는 타원, 기둥의 숲, 정통 고전주의의 문법을 구사하였고, [[보로미니]]는 이의 대척점에서 비정형의 다양한 기하학적 도형들의 역동적인 중첩을 통해 고전주의부터, 중세 건축, 매너리즘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법을 활용하였다. 후기에 이르면 바로크 건축의 중심지는 로마에서 [[사르데냐 왕국]]이 지배하던 [[토리노]]로 옮겨가게 된다. 주로 보로미니의 비정형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이 탄생했으며, 보로미니 이상으로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기하 작도에 기반한 건축을 구사하였다. 이 곳의 양식들은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이 프랑스, 독일의 바로크 양식으로 넘어가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으며, 역으로 이북의 양식을 받아들이는 창구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사르데냐 왕국의 궁전으로 쓰였던 스투피니지 팔라치나, 마다마 팔라초가 대표적인 예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