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하마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 [[아메리카 원주민]] 일족 중 하나인 [[https://en.wikipedia.org/wiki/Lucayan_people|루카야인]]이 살던 섬이었으나, 16세기 유럽인의 침략 이후 모두 살해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가 대가 끊겼다. 또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온 곳이 바하마였다. 그는 바하마의 한 섬을 [[산살바도르]]라고 이름지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서인도제도]]에 [[해적]]들이 들끓던 시대엔 해적 소굴이 되어 [[나소]]엔 [[해적 공화국]]까지 세워질 정도였다. 프랑스-스페인 함대의 토벌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던 해적들은 영국의 [[조지 1세]]가 [[우즈 로저스]]를 바하마 총독에 임명함으로 종식된다. 이후 영국은 [[벤자민 호르니골드]]를 비롯한 [[사략선|친영파 해적들로 하여금 해적들을 토벌하게 하여]] 바하마 일대의 해적들은 사라졌다. 이렇게 지배권을 확립한 영국은 [[식민지]]화를 시도해 1783년 정식으로 영국 식민지로 삼았다. 바하마 일대의 섬들은 19세기부터 [[미국인]]들의 [[관광지]]가 되었고, 이후 미국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1920년대에 미국에서 [[금주령]]이 실행되었을 때 바하마의 나소는 [[밀수]]로 번영했으나, 1930년대 금주령이 폐지되자 몰락했다. 친[[나치]], 친독일 발언을 일삼은 [[에드워드 8세|에드워드 상왕(上王)]]을 영국 정부에서는 불편하게 여겼다. 결국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음에도 자중하지 않던 에드워드 상왕을 바하마 총독으로 추대하면서 사실상 [[귀양]]을 보내버린 적이 있었다. 인구의 대다수는 흑인이었지만 바하마에선 [[백인]]들이 주요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1953년 흑인들은 [[진보자유당]](Progressive Liberal Party, PLP)를 창당했으며,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법학위를 수료한 흑인 변호사 [[린든 핀들링]]이 법률고문으로 참여하였고, 1956년부터 당대표로 이끌며 주요정당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정치적인 움직임으로 1964년 바하마는 [[자치령]]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이후 린든 핀들링이 이끄는 PLP와 제3정당의 연대로 1967년 첫 흑인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린든 핀들링 총리 체제하에 1973년 독립을 성취했고, 이후 1992년까지 PLP의 흑인 출신 린든 핀들링이 총리로, PLP가 집권여당을 유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