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생광 (문단 편집) == 여담 == * 이영 미술관에서 박생광 화백의 그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 [[천경자]]는 생전에 박생광에게 " '토함산 해돋이'를 저 주시고, 제 그림 중 선생의 마음에 드시는게 있으면 다 가져 가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박생광이 말했다. "천여사님. 내 그림이 아직 천여사 그림보다 모자라라는데 그랄수야 없지요. 내가 공부를 더 많이 해서 잘 기리면 그 때 가서 바꿀 수 안 있겄소." * 도올 [[김용옥]]은 "세상에 내고(박생광) 만한 화가가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직 내고를 일본 채색화의 아류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데, 그럼 독일에서 공부한 사람은 독색이고 프랑스에서 공부한 사람은 불색이던가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 박생광은 늘 입으로 붓을 빨았다고 한다. 후원자인 김이환은 빨간색 물감에 쓰이는 [[주사(광물)|주사]]가 수은이어서 해롭다고 충고했으나 박생광은 '개않다'고 웃었다. 그는 붓 빨기를 통해, 가벼운 색정적인 느낌과 천진성이 배합된 독톡하고도 아름다운 필치를 만들어냈다. 뒷날 그가 후두암 진단을 받았을 때 김이환은 그 놈의 [[주사(광물)|주사]]가 원수라고 수없이 한탄했다고.. * 박생광이 세상을 떠나자 평소에 친했던 시인 [[구상(시인)|구상]]이 추모시를 썼다. >{{{#!wiki style="text-align:center" 추 모 송}}} >{{{#!wiki style="text-align:right" 具 常}}} >한평생 몸과 마음 그림에다 바치셔서 >촛불처럼 스스로를 오롯이 사르시니 >한국화 그 뿌리위에 새 경지를 여셨네 > >깊은 산 수행인의 탈속한 모습에다 >천성으로 타고나신 보물이 그 마음씨 >가셔도 우리 가슴에 그림 함께 사시네 [[분류:진주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1904년 출생]][[분류:1985년 사망]][[분류:경상국립대학교 출신]][[분류:홍익대학교 재직]][[분류:경희대학교 재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