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세리 (문단 편집) === KLPGA 시절 === 1996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당시 언론에서는 박세리를 "무서운 10대"로 불렀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보인 박세리는, 1992년 중3 시절 초청 받은 KLPGA 대회 '라일앤스콧 여자오픈'에서 원재숙을 연장 전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리 LPGA - JLPGA 대비, 한 수 아래의 투어라고 해도 중 3이라는 나이에, 프로 선수와 연장에서 승리한 것 자체는 그야말로 쇼킹한 사건이다. 이듬해 1승을 추가한 뒤, 고3이었던 1995년에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시즌 4승을 거두는 놀라운 성적을 보였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면, 당시의 KLPGA는 KPGA보다도 주목도가 떨어져[* 반면 현재는 KLPGA의 인기가 KPGA를 아득히 뛰어넘으며, 여자 프로 대회가 남자 프로 대회보다 상금이 더 높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렇게 된 것은 박세리를 보고 동경하며 자란 여자 선수들이 너무나도 많고, 이들이 세계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낸 덕인데, 걸출한 선수 하나가 혼자 종목 하나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어버린 예시다. 남자 골프에서는 [[최경주]]가 있지만 메이저 대회 우승은 없는데다가(2011년 우승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메이저 대회만큼의 규모와 상금을 갖춘 대회이기는 하다.) 박세리만큼의 스타가 되지는 못했다.] 연간 10개 대회 좀 넘게 운영되고 있었는데 아마추어가 1/3 이상을 우승으로 해 버렸으니 '프로 잡는 아마추어'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골프 팬들의 주목을 받으며 정식 프로로 데뷔한 박세리는 확실히 달랐다. 총 11경기 출전, 4승 - 2위 5회 - 6위 1회를 기록하였다. 출전 전 경기 TOP 10에 가장 부진했던 것이 6위다. 1997년에 2승을 기록한 박세리는 더 큰 꿈을 위해 미국행을 결정했다. 1997년 1년간 세계 최고의 교습가 중 하나인 데이비드 레드베터[* 타이거 우즈의 스윙코치였던 부치 하먼과 함께 가장 유명한 스윙코치 중 한 명이며 박세리 이전에 [[닉 팔도]]의 스윙코치도 맡았었고 현재는 [[리디아 고]]의 스윙코치를 맡고 있다.]로부터 철저한 레슨을 받으며 훈련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열린 퀄리파잉스쿨에서 현재도 정상급 선수로 활동 중인 크리스티 커(미국)와 함께 공동 1위로 Q스쿨을 통과하며 화려하게 LPGA 무대에 데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