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세리 (문단 편집) === LPGA 시절 === 1998년부터 LPGA 투어에 참가하여 투어 참가 첫 해에 맥도널드 메이저 대회인 LPGA 챔피언십 우승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온갖 대회에 참가를 신청했고,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도 당시 박세리가 알고 있던 유일한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 오픈의 예선전 면제를 따내기 위한 대회로 생각했을 정도다.[* 우승자 인터뷰에서 '이 대회가 메이저?' 라는 반문에 기자들이 폭소했다고 한다.]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은 신인으로써는 역대 2번째에 해당하는 와이어 투 와이어[* 1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 1위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하루 하루 샷 감이 다른 골프의 특성상 연간 이를 달성하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로 달성이라고 한다. 이후 다시 메이저 대회인 [[https://youtu.be/tMkjyQM-WN4|U.S. 여자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를 살아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잊히지 않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위의 사진의 그 경기가 바로 이 장면이다.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갔을 때 까맣게 탄 종아리와 대비되는 하얀 발 역시 레전드급 장면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만큼 박세리가 여름에 강렬한 땡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열심히 연습과 훈련에 매진해 왔다는 것이다. [[박인비]]는 이 발을 보고 본격적으로 골프 클럽을 잡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 장면에 나온 샷은 당시 상황에서도 절묘했는데, 당시 우승을 두고 선두와 단 1타 차로 뒤지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드롭을 하여 벌타를 받고 칠 경우 준우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를 포기하지 않고 드롭을 하지 않은 채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린 것이다. 이후 다시 동점이 되어 재연장을 한 끝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결국 저 맨발 샷을 하지 않고 준우승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맨발 투혼까지 벌이며 끝까지 우승을 노리느냐의 전환점이었던 것이며, 이는 당시 IMF로 절망하던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1997년 12월에 대한민국을 어둠으로 몰아넣은 [[1997년 외환 위기|IMF 사건]]으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대한민국의 온 국민들에게 악전고투 끝에 우승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박찬호]]와 함께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당시 대한민국 5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공익광고]][* 국정홍보처의 전신이었던 공보실에서 만든 공익광고다.]에 이 장면이 들어갔고, [[상록수(가요)|상록수]]와 함께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워낙 전설적인 장면인지라 예능 등지에서 골프가 소재일 때 기본적으로 양말을 벗으면서 그 장면을 패러디 하는 걸 간간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그해에만 4승을 거두면서 LPGA '올해의 신인왕'을 수상했다. USGA에서 "Leader of the Pak"라는 제목으로 재조명한 [[https://youtu.be/ql7Uf_QNe5Q|1998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본 경기 72홀 연장전 18홀 서든데스2홀 도합 92홀로 US여자오픈 역사상 최장경기로 기록되었다. 월요일 18홀 연장전은 없어졌으므로 앞으로도 없을 최장 기록경기이다. 당시 이 연장 라운드까지 갔던 상대는 아마추어 선수 신분으로 출전했던 제니 추아시리폰이라는 태국계 미국인의 무명 골퍼였는데, 박세리를 상대로 서든데스까지 간 것부터 당시에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었던 [[업셋]]에 해당되는 사항이였다. 이후 추아시리폰은 대학 졸업 후 2000년에 프로 데뷔까지 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2005년에 골프 선수를 은퇴했고, 은퇴 후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에서 간호학 석사를 받은 이후 현재의 남편 로버츠 베츠와 결혼하고 남편의 성을 따른 현재는 와날리 베츠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뒤에 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골프선수를 은퇴한 이유는 그 동안 아버지가 볼티모어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골프선수 활동비를 지원해줬는데, 당시 L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등록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었던 4,000달러까지 지원을 해 줬음에도 본인이 이 돈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은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LPGA를 그만둔 것 자체는 2001년이지만 이후에 버지니아대학 골프 팀의 코치로 활동하면서 아시아 투어도 뛰고 했었다 보니 공식적인 은퇴는 2005년으로 기록되었던 것이다. 이 업셋을 인정받아서 2011년에 듀크대학교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1년 브리티시 여자 오픈 우승, 2002년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함으로써 최연소 [[메이저]] 4승을 기록했다. 2006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2007년 6월에는 꿈에도 그리던 [[명예의 전당#s-3.1.6|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입회 자격은 2004년 미켈롭 울트라 오픈 우승으로 획득한 것으로, 자신의 투어 생활 7년 반 만에 조건을 구비했다. 22승으로 22점, 이 중 5차례의 메이저 우승으로 추가 5점, 그리고 2003년 베어 트로피 수상으로 1점 등 27점을 모두 충족했다.] 또 7월에는 KLPGA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하였다. 2011년 6월 스태이트 팜 클래식 오픈에서 5위에 오르며 아직 박세리는 죽지 않았음을 알렸다. 2012년 9월 23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 2012 KDB대우증권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9년 만에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참고로 이때는 너무 위상이 높은 대 선배의 우승이라 일반적으로 우승자에게 펼쳐지는 세리머니인 동료들의 물 뿌리기가 어설퍼서 갤러리들의 장난 어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이 유튜브 호연지기 방송에서 밝힌 당시 상황은 달랐다. 원래 승리를 하면 샴페인이나 물을 선수들이 뿌리는데, 그때 하필 병이 따지지 않아서 미처 못 뿌려서 주춤주춤했다는 것이다. 후배들이 병을 못 따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고 박세리가 어려워서 후배들이 눈치를 본 것이라는 오해를 샀는데, 그 점이 바로 [[https://youtu.be/hWLP5H9TYcg?t=478|오해였다.]] 어깨 부상의 여파로 2015년에는 거의 플레이하지 못하였고, 2016년 [[미국]] [[애리조나|애리조나 주]] [[피닉스(도시)|피닉스]]에서 열린 LPGA [[JTBC]] 파운더스컵에 출전, 모처럼 만의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12언더파 공동 42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은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실질적인 은퇴 기자회견'을 가지며 그간의 파란 만장했던 선수 생활의 종지부를 선언했다. 선수로서는 은퇴하였지만, 이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는 등 은퇴 후의 활약이 더 주목받게 되었다. 부상 등의 이유로 계속 결과를 내기 쉽지 않음을 알았기에 아쉽지만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명예의 전당 멤버이므로 자기가 원하면 은퇴를 번복하고 원하는 대회에 다 출전할 수 있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는 '전년도에 10경기 이상 출전'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기에 기준 달성 전에는 출전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전일본공수|ANA]] 인스퍼레이션(前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의 우승하여,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자 하는 꿈은 이룰 수 없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많은 우승에도 불구하고 여자 골프의 먼치킨급 레전드인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과 전성기를 같이하는 바람에 자신의 전성기에도 LPGA 공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라본 적이 없다. 특히 역대 최고의 여성골퍼라는 평을 듣는 소렌스탐이 결정적. 박세리는 2001-03 3년 연속 상금랭킹 2위였는데 세번 모두 1위가 소렌스탐이었다. 참고로 한국인 골퍼로서 최초의 세계 랭킹 1위는 [[신지애]]이며, [[박인비]], [[유소연(골프선수)|유소연]], [[고진영]], [[박성현(골프선수)|박성현]]도 세계랭킹 1위에 올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훌륭했던 커리어였음은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다. 2018년 About.com 선정 역대 최고의 여자골퍼 50인에서 18위에 올랐다. 참고로 박인비는 28위, 신지애는 41위다. 한국계까지 포함하면 리디아 고가 45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