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승민 (문단 편집) === [[현대 유니콘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박승민/Example.jpg|width=100%]]}}} || 실제로 프로 입단 후,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모두 9⅔이닝 7실점(방어율 6.52), 8 삼진, 6볼넷, 피홈런 2. 거의 등판 기록이 없으며 2001년과 2003년은 아예 1군에서 등판조차 하지 못했다. 한편 이런 무명시절에 치러진 [[2003년 한국시리즈]],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상대팀의 [[조웅천]]과 [[임창용]], [[권오준]], [[박석진]] 같은 사이드암 투수에 대비하기 위하여 [[배팅볼 투수]]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본격적으로 1군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전반기에 그럭저럭 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5월 말 한화전에서 만루홈런을 맞아 2군에 갔다 와서 6월 말 두산전에서 '''또 만루홈런을 맞아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8월 18일 1군에 다시 복귀한 후 완전히 각성하였다. 32⅔이닝 8실점(자책 7, 방어율 1.93), 삼진 38개, 볼넷 6개라는 성적을 남기며 시즌을 종료하였고, 현대팬들에게 어느정도 기대를 받지만 언론이나 타팀팬들에겐 전혀 주목받지 못했었다. 나이 30살이 되던 2006년에 드디어 꽃을 피운다. 당시 시즌 초반에 [[황두성]]이 마무리였는데, 황두성이 개막전에서부터 먼지나도록 두들겨맞고 성적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자, 불펜요원으로 활동했던 박준수가 마무리로 기회를 잡으면서 확실하게 위치를 잡았다. 2006년 시즌 기록은 61경기 출장에 69⅓이닝을 소화하며 5승 5패 '''38세이브''' 평균자책 1.82.[* 스탯티즈 제공 ERA+는 198.8, FIP+ 195.1에 WAR은 무려 3.82다.] 아무리 2006시즌이 투고타저의 해였다고 하지만, 무명의 선수가 나이 30이 다되어서 세운 기록으로는 정말 놀라운 수치다.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이 해 현대 유니콘스의 깜짝 2위에 한 몫 했다. 당연히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승선했었으나, 현대가 [[한화 이글스]]에게 [[KBO 플레이오프/2006년|PO]]에서 1차전 4:11로 승리 뒤 내리 3연패를 해버리면서 세이브는 기록할 수 없었고 2경기 출장에 1⅔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평균자책 0을 기록했다. 2007년까지는 줄어들은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바깥쪽 슬라이더 승부가 잘 안 먹히며 지난 시즌보단 부진하였지만 그럭저럭 무난한 피칭을 보여줬는데 2006 시즌 말 싱커를 배우기 위해 무리한 결과 몸에 부상을 입는다. 원래 직구와 슬라이더 투 피치로 재미를 본 투수인데, 구종을 다양화하겠다고 싱커에 도전했다가 팔꿈치에 부상이 온 것이다. 그 결과는 무려 세 번의 수술이었다. 뼛조각 제거 수술, 신경 수술까지. 그렇게 팔꿈치에 세 번 칼을 댔고, 2009 시즌은 아예 임의탈퇴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