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영희(작곡가) (문단 편집) === 관현악곡 === * '''대관현악을 위한 '소리' (1979-80)''' || [youtube(aMaeUMgaOLQ)] || || '''대관현악을 위한 '소리' (1979-80)''' || > 작품 ’소리‘ 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는 한국 고유의 ’마당극‘에서 얻어 왔다. ‘소리‘는 전체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마지막 여섯 마디가 첫 악장의 시작부분과 맞물리면서 하나의 원을 이루는 형태로 구성된다. [br][br] 이 곡에는 4개의 상호 분별 가능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이 중 3개는 합치거나 겹쳐지는 형태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곡을 전개해 가는, 근본적으로 동질적인 요소들이다. [br][br] 곡 전체를 관통하면서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첫 번째 요소는 ‘한(恨)’이다. 다른 두 개의 요소는 ‘농악’과 ‘향두가’에서 따온 것이다. 오늘날 서구음악의 영향 아래 세계 어디서나 관찰되는 것이지만 이런 전통의 소리가 한국에서도 점차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br][br] 네 번째 요소는 넓은 폭의 과격한 아코드로 위 3요소의 음악적 전개와 발전을 방해, 파괴 또는 중단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이 요소를 ‘이질적인 파워’, 일상을 공격하는 어떤 힘으로 상정한다. 공격이 꼭 위협인 것은 아니다. 도전이자 기회가 되기도 한다. [br][br] 소리‘는 사람이 귀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소음에서부터 음악까지의 모든 울림을 포함하지만, 문화적 동질감 또는 이질감에 따라 친근함과 생소함, 평화와 폭력, 자유와 억압, 창조와 파괴 등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br][br] ‚소리‘를 통해 나는 내게 익숙한 토양인 한국의 음악과 더 큰 성장을 위한 도전의 장인 서양의 음악을 생각해 보았다. 작품에 내가 직접 채보한 전라도 장단을 인용하였다. * '''대관현악을 위한 '님 (1986-87)''' || [youtube(MG9GeMESjxo)] || || '''대관현악을 위한 '님 (1986-87)''' || > '님'은 음악적 복합성의 증폭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작곡한 어느 곡보다 담백하고 엄격한 모습을 띠게되었다. 그래서 어떤 형태의 장식도 쓰지 않았다. 땅은 시인의 말처럼 모든 희망이 싹트는 곳이다. 대지(大地)가 의미하는 광대한 연관성 가운데에 극히 일부분만을 표현한 것이 나의 작품 ‚님’이다. [br][br] '님'은 직역이 불가능한 개념이다. 이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광범위하여 그 중에는 진부한 것도 있다. 그래서 시인이며 승려이며 또 독립투쟁가인 만해 한 용운 (1879-1944) 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중략) [br][br] 이 작품을 지난 몇 년간 민주항쟁을 위해 분신자살한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바치고자 한다. 그들은 한줌의 재가 되어 땅으로 되돌아갔다. * '''오보에와 관현악을 위한 '비단실' (1992-93)''' > 비단실은 명주로 곱게 자아낸 부드럽고 윤기 있는 실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한국말이다. [br][br] 매우 섬세한 어떤 감정을 악기로 표현하려고 할 때 우리는 비단결 같은 선율을 추구한다. 하인쯔 홀리거(Heinz Holliger)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문득 우리의 고운 한글로 표현된 이 비단실의 개념을 떠올렸다. 하나의음이 완벽하기 위해서는 그음을 구성하는 음악적 요소들이 마치 여러갈래의 명주가 엮어 곱고 부드러운 비단실로 하나가 되듯이 윤기 있는 선율을 자아내야 한다. [br][br] 작품 '비단실'은 무속전통을 뿌리로 발전해온 한국의 민속음악에 그 연이 닿아있다. 양반들이 가사, 가곡과 같은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민중은 이 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이 즉흥적이면서도 정밀했던 음악은 연주자 스스로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했던 것으로 시나위라 불리운다.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면서 울리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음들이 마치 명주의 한올 한올이 비단실을 자아 내듯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어 냈다. 연주자 하나 하나가 이렇듯 자신의 역할을 다하므로서 전체적인 음악에 생동감을 주었다. [br][br] 시나위 연주에는 주로 다음의 악기가 사용된다. 장고는 조율의 역할 뿐 아니라, 연주의 템포(속도), 박자 그리고 기본장단(리듬)을 관장하였다. 비단실로 꼬아 만든 현으로 소리를 내는 가야금, 아쟁, 거문고 등은 주로 북과 함께 연주된다. 가야금은 손가락으로 튕겨서, 아쟁은 여린 개나리 가지를 다듬어 만든 활로 훑어서, 거문고는 나무활로 두드리거나 긁어서 소리를 낸다. 해금은 말총으로 만든 채로 소리를 내는 기악기(풍악기)로서 그 비단결 같은 소리가 여인네 음성에 가장 가깝다. 해금은 피리(오보에), 대금(플륫)과 함께 삼중주로 연주될 때 조화를 이루며 북과 함께 시나위 연주의 원 구성악기이다. [br][br] 이 곡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것 즉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로 완성했다는 것 자체는 이미 시나위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시나위를 복구하거나 재생하고픈 의도는 전혀 없으며 이는 작곡가로서 가능한 일도 또 바람직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나위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안에 녹아있는 생동감을 더 절실하게 전하고자 했다. * '''실내 관현악(또는 실내 합주)을 위한 '고운 님' (1997-98)''' > '님'은 직역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광범위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세속적이고 진부한 것들도 있다. 그래서 시인이며 스님이며 항일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br][br] 군말 [br][br]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의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br][br]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br][br]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 '''바이올린, 비올라와 관현악을 위한 2중 협주곡 '높고 깊은 빛' (2010-11)''' * '''바이올린, 비올라와 실내 관현악을 위한 2중 협주곡 '높고 깊은 빛 II' (2011-13)[* '높고 깊은 빛' 의 실내 관현악용 편곡판.]''' > 음악적으로 보았을 때 빛은 높은 주파수와 파장으로 표현되며 동서양은 막론하고 빛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깊고도 높다. [br][br] 밤이 낮을 잉태하듯이 모든 빛은 어둠에서 태어난다. 시편 36장 10절에 보면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라 하였고 바울이 에베소에 보낸 편지, 에베소서 5장 8절과 9절에는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라고 쓰여있다.[br][br] 열린 공간으로 „가라앉음 (沈潛)“은 내 많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들숨과 날숨, 존재와 공명은 모든 음악의 기반이다. 악기를 불거나 노래를 하거나 모든 소리는 주파수와 파장으로 일어났다 다시 사라진다. 나는 음악을 통해 이를 진지하게 확인한다 [br][br] 도교, 불교, 기독교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신비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자기 비우기“가 전혀 다른 의미의 깊은 충만감으로 마음의 공간을 채우는 것이라면, 들숨은 성장이요, 날숨은 사라지는 것,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을 통해 내적으로 깊이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art, 약 1260 - 1327)는 높고 낮음은 하나라고 했다. [br][br] 나는 에디트 슈타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이 작품의 주제를 설명하고 싶다. [br][br] "신을 향해 올라가면 갈수록 영혼은 자신을 더 철저히 내려놓는다: 신과 하나 됨은 영혼의 가장 깊은 부분, 가장 낮은 부분에서 이루어진다.“(Edith Stein »십자가 요한에 관한 연구« 중) [br][br] 다시 소리로 돌아와, 가장 낮은 주파수는 가장 낮은 빛을 의미하지만 이런 빛마저도 밝은 광채로 표현된다. [br][br] 작곡에 있어 나는 처음부터 열린 소리공간, 즉 가장 높은 (하늘 天) 곳과 가장 낮은 (땅 地) 곳을 아우르는 수직적인 „모화음"을 사용한다. 이런 소리공간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중심부에서 수평적인 흐름을 구성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이중주가 그들의 악기를 통해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축복을 노래하다가 서서히 잦아들면 그 소리의 정착은 음악적으로 빈 공간을 형성한다. 여기서 정적(情寂)은 깊은 충만을 의미하고 빛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귀가 자신을 향해 열리면 열릴수록 빛의 소리를 향해 더 크게 열리듯이 … [br][br] 2010/2011년도 작품인 "높고 깊은 빛 (Hohes und tiefes Licht)"을 독일 바바리안 방송국 위탁으로 컨서트 시리즈인 뮤지카 비바(musica viva)에서 초연되었고 그후 재구성한 것이 2012년도 작품인 "빛의 열매 (Der Glanz des Lichts)"이다. 원곡과는 다른 새로운 제목을 부여했다. * '''실내 관현악을 위한 '생명나무 II' (2014)''' * '''실내 관현악을 위한 '생명나무 III' (2015)''' || [youtube(WhjHmUB5TxQ)] || || '''실내 관현악을 위한 '생명나무 III' (2015)'''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