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준영(법조인) (문단 편집) == 생애 == 1974년 10월 29일, 전남 [[완도군]] 노화읍 출신으로 [[노화중학교]], 노화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푸른밤에 출연했을 때 전자공학과 1학기만 다녔다고 말했다.] 즉, 몇 안되는 '''고졸 출신''' 변호사 중 하나.[* 고졸 출신 변호사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용삼]] 전 국회의원 등이 유명한데 역사를 통틀어서도 몇 명 되지 않는다.] 박준영 변호사보다 기수 후배인 고졸 법조인은 단 3명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착실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등 가정의 불행으로 고등학교 시절엔 문제아였다고 한다. 가출하고 돈을 벌던 참이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장만은 따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마음을 잡아 졸업하고 가까스로 대학에도 진학한다. 그러나 군대를 갔다 와서 대학을 자퇴하고 사법시험 준비를 하게되는데, 그 계기가 자기보다 잘난 것도 없던 친구들이 "행세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인생 역전을 항상 꿈꾸던 중, 군대에서 만나 친해진 선임이 법대생이었는데 제대하고 바로 사법시험을 준비할 거라는 말을 듣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어, 제대를 하자, 본인보다 먼저 제대하고 이미 고시촌에서 사법시험을 공부하던 선임에게 연락하고 찾아가 함께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 선임은 실제로 합격해서 법조인이 먼저 되었고 2022년 기준 판사로 근무중이라고 한다. 지금도 연락하는 사이다.] 이후의 모습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한 동기였다고 할 수 있겠으나, 본인은 이 결정 이후 정말 죽도록 고생을 했다고 한다. 법대생들의 고시 공부 타입상 한 학기 고시 공부하고, 한 학기 대학다니는게 정석이라 선임이 고시 공부 시즌이 끝나고 복학 시즌이 되어 떠나게 되자 선임의 고시원에 얹혀 살던 박준영은 혼자 공부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 상당히 힘들어졌다고. 이후에도 몇번의 불합격을 겪으면서, 정말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살면서도 목숨 건 노력으로 버텨서 결국 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의 회고로는 2차 시험에서 단 1점차로 간신히 붙었다고 한다. 당시 2002년이 월드컵 시즌이라 다들 공부가 안되는 시점이었고,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회고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주관식에서 1점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라고...]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35기로 수료한 후 [[수원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