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준영(법조인) (문단 편집) === 재심 전문 변호사로 === 그런데 2007년,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을 [[국선변호인]]으로서 변호하게 된다. 처음에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리고 변호사 일에 도움이 될까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사건을 맡고는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여[* 피의자들이 죄다 경찰과 검사에게 자백을 해버렸기 때문.] 진지하게 할 마음이 없었고 솔직히 초반 한달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도 성의도 별로없게 조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일로 인해 마음의 충격을 받고 태도가 점점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건 바로 누명을 쓴 가출청소년들을 과거에 돌봤던 청소년센터 소장과 선생님이 자신들에게 무고와 억울함을 호소했던 청소년이 있으니 제발 구해달라고 호소를 하자, "그럼 선생님들이 사건자료를 분석하신다면 진지하게 하겠다"고 요구하면서 속으로는 '자기들도 자기들 일로 피곤한데 대충하다가 그만둘거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예상을 완전히 깨버리고, 그 선생님들은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충격을 받았고, 박준영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그들이 퇴근 후, 박준영의 사무실에 와서 수 주간 매일 검찰의 수사기록을 5시간 이상씩 분석해서 의심쟁점을 전부 다 분석한 것이다. 이를 본 박준영은 그들의 필사적 태도에 감동을 받으면서 그 의심가는 쟁점들을 자신도 진지하게 분석하였고, 구치소의 피의자들을 찾아가 사건경위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하였고, 결국 경찰과 검찰의 조작에 의해 그들이 누명을 썼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어 이 일의 진위를 밝히는 것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당시 처음 만났을때와 달리 다음에 구치소에 찾아가 피의자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중요했던 것은 사건당일 현장인 학교주변 CCTV 영상들이 명확히 있었음에도 경찰이 확보하지 않아 시간이 지나 자동 삭제되게 만들었고, 현장검증 때 피의자들에게 모든 행위를 경찰이 지시했다는 부분이었다. 피의자들에게 너무 세세한 행위들을 경찰이 말로 설명한 뒤 피의자들이 움직이게 시키고 있었다. 수원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사실 피의자들이 폭행한 사람[* 멱살잡이(훔친 돈 내놓으라고)를 한 걸 폭행이라고 말한 거라서 당연히 사망하지 않았고, 사망할만큼 과도한 폭행이 아니었고, 나이도 살해당한 피해자와 달리 20대 성인 노숙자였다. 살해당한 피해자는 10대 미성년자 여성이었다. 그리고 사건 일자도 이 폭행사건이 살인사건 2일전으로 전혀 다르다. 그냥 경찰측에서 다른 일반 노숙자들이 "며칠전에 쟤네들이 다른 노숙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욕을 하더라"라는 말을 듣고 살인누명을 뒤집어 씌워 체포 및 입건한 것.]과 살해당한 피해자가 서로 아무상관도 없는 전혀 다른 사람임을 밝혀내, 재심[* 박준영은 재심까지 안 가고 자신이 처음 변호했을때 무죄가 나왔다면 자신이 지금같은 사람이 안 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진실을 밝혀냈다고 생각했는데 1심 유죄가 나오자 분노하였고, 피의자들에게 너무 미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법조인생을 걸고 끝까지 가기로 결심하면서 완전히 변해버렸다고 한다. 결국 재심까지 성공해내면서 정신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변호사가 된다.]을 이끌어 낸 후 재심 전문 변호사로 떠올랐다. 이 사건은 인간 박준영의 인생 자체를 바꾼 사건으로 스스로 지칭할 정도이며, 그렇기에 다른 재심 사건으로 방송에 나오거나 신문인터뷰를 할때에도 자기 인생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수원 노숙소녀 사건을 스스로 반드시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을 속물[* 재심사건을 1개만 성공하면 스타변호사 직행 열차를 탈거라 생각했다고 한다.]이었다고 자칭하였고 사람이 변한다는 것도 잘 안 믿던 사람이었으나, 정말 이 한가지 사건으로 자신이란 사람이 많이 변해가는 걸 느꼈다고 한다. 수원역 재심사건 1심까지는 본인이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아졌다고 판단하여[* 재판을 해본 뒤 처음으로 재판에 진 것만으로 너무나 화가 나서 혼자 있을때 눈물이 줄줄 났다고 한다.], 2심에서 처음으로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표현을 써서 정식 서면에 기재하여 제출하며 목숨을 걸고 재판에 임했고 자신이 완전히 변해가기 시작했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의 장경욱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했으며 이로 인해 국정원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아랫 단락에 나오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장경욱 변호사에게 아무래도 제대로 낚인 듯. 간단하게 정리하면 장경욱 변호사의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수락한 후 인터넷을 검색하고서 장경욱 변호사의 화려한 경력을 보고 자기가 장경욱 변호사에게 낚인 꼴이란 것을 알았던 셈. 사실 그 전에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했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재심 사건을 많이 맡게 되면서 수입이 줄어들어 이미 사무실 직원도 다 내보내고, 이후에는 직원도 없이 혼자 일하는 사무실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들이 수없이 쌓인다고 한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22574.html|인터뷰]]. 재심이 필요한 힘 없고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은 대개 박 변호사에게 수임료조차 주기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인 반면, 확정 판결 난 사건을 다시 재판해달라고 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준비가 필요[* 증인을 30초 접견하기 위해 지방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사실 30초 접견하자고 약속해서 가는 게 아니라, 본인은 증인 한명이라도 더 만나서 증언 좀 구해 보려고 거기까지 고생해서 가는데, 증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미 끝난 사건에 다시 얽히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보자마자 거부하거나 제대로 얘기를 안 해주거나 아예 안 만나 주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거다. 변호사로서는 정말 고난의 행보 그 자체.]하여 다른 영리활동과 병행하기란 불가능하다. 변호사들이 자조 반 농담 반으로 하는 말 중에 "무죄 변론해 달라는 사건이 자꾸만 들어오는 것은 그 사무실이 망할 조짐"이라는 것이 있는데 보도대로라면 딱 그 격언대로 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