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흥식 (문단 편집) == 여담 == * 대구중학교 시절 야구에 제법 소질을 보이던 박흥식이었지만,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하면서 박흥식은 마음 한 편으로 '미국에서도 야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 속에 이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일고등학교 야구부|신일고등학교]]의 [[한동화]] 감독이 박흥식의 아버지를 찾아와 "아들을 저에게 맡겨 주시면 훌륭한 선수로 키워 보겠다"[* 물론 한 감독의 집에서 숙식 일체제공이라는 조건이 붙긴 했다.] 라며 그를 신일고로 전학시켜달라고 간청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반대했지만 한국에 혼자 남더라도 야구선수로 열심히 뛰겠다는 박흥식의 결심에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박흥식의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한국에 홀로 남은 박흥식은 한동화 감독의 집에 기거하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 [[신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미국으로 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사무칠 때 마다 박흥식은 슬픈 감정을 달래려 [[크림빵]]을 먹었고, 주변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박흥식에게 '''빵식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 프로 은퇴를 전후로 두번이나 가족들이 사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그 때마다 스승 [[백인천]]의 부름으로 다시 [[KBO 리그]]에 돌아왔다. 제시된 내용은 약간 달라도 백인천이 박흥식을 부른 말은 둘 다 거의 같았다고 한다. 1989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형님의 세탁소 일을 돕고 있던 박흥식에게 [[LG 트윈스]]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백인천이 전화를 걸었다. >백인천. '''빵식아, 요새 뭐하냐?''' >박흥식. '''네 감독님, 세탁소 하고 있습니다.''' >백인천. '''야 이놈아 세탁소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당장 짐 싸서 한국으로 건너와라. 나랑 같이 뛰자.''' >박흥식. '''...알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결사 반대했지만 박흥식은 아내 몰래 혼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미국의 아내에게 전화로 미안하다고 하자 아내는 어쩔 수 없으니 열심히 잘 하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후 선수생활을 완전히 마감한 박흥식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를 경영하던 중, 1996년 [[삼성 라이온즈]]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방문했다가 백인천 감독과 다시 조우하였다. >백인천. '''빵식아, 요새 뭐하냐?''' >박흥식. '''네 감독님, 세탁소 하고 있습니다.''' >백인천. '''야 이놈아 세탁소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당장 짐 싸서 한국으로 건너와라.''' >박흥식. 저 은퇴한 지 3년이나 됐는데요? >백인천. 누가 선수로 뛰래? 이번엔 [[코치(스포츠)|코치]]야. '''나랑 같이 뛰자.''' >박흥식. '''...알겠습니다.''' 박흥식이 또다시 한국행을 선언하자 아내는 자식 교육도 생각하라며 만류했지만, 결국 백인천의 호출을 받아들여 귀국한 박흥식은 한동안 [[KBO 리그]]에서 명 타격코치로 이름을 남겼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여러모로 백인천의 안목이 오늘날의 명코치 박흥식을 만들어낸 셈이다. * [[소대수캐스터]]와 김동영 스타뉴스 기자가 진행하는 <오! 마이 타이거즈> 방송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흥식 감독대행 부임 이후 선수들에게 팬들을 위하여 싸인을 잘 해주라고 이야기했다 한다. 배신감을 가지면 야구장에 안 오는 팬들이 나올 수 있다고 했으며, 오늘날의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D9nqzZTDphM|#]] * KIA 타이거즈 감독대행 시절에 안 좋았던 팬 서비스를 개선시켜주기까지 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