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지성주의/사례 (문단 편집) ===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근간이 되는 [[이데올로기|사상]]들인 [[상대주의]]나 [[다원주의]] 또는 [[회의주의]]나 [[해체주의]]가 반지성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연관된 [[철학자]]들(그 중에서도 주로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 반복적으로 이성주의 전반에 대한 비판 혹은 적개심이 드러남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가 있다. 이들은 포스트구조주의로 묶이기도 하는데, 원분류야 어쨌든 포스트모더니즘 계통에서 반복적으로 참조하는 철학자들이다. 본격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서뿐만이 아니라, 현대철학 입문서 중 포스트모더니즘을 최종 기착지로 작성되는 대중 철학서들도 반이성주의, 반지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세계 대전]]의 원인이 이성주의에 있으므로 이성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식의 대단히 과격한 내러티브가 자주 등장한다. [[자크 데리다]]의 경우 [[로고스]](logos)로 대표되는 서양의 이성주의를 남근이성중심적(phallogocentric)이라고 서술한 바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인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로고스에 기반한 [[자연과학]]이야말로 궁극적인 [[맨스플레인]]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과학]] 및 [[수학]]에 매우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벨기에 출신 페미니스트 [[뤼스 이리가레]]는 과학이 유체역학의 난제들을 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과학과 수학이 남성 중심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 “고체역학이 유체역학보다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이유, 예컨대 과학이 난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유체를 여성적인 것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리가레의 해석이다. 남자는 돌출했고 딱딱해지는 성기를 가진 반면, 여자는 달거리에 질액이 스며나오는 구멍을 가지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남자도 가령 정액을 방출할 때처럼 흘러나오는 것이 있지만 남자의 성기가 갖는 이러한 측면은 강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남성 성기의 딱딱함이지 유체의 흐름을 부추기는 역할이 아니다. 이와 같은 고체의 이상화는 수학 분야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된다. 수학에서는 유체를 박판이라든가 그 밖의 변형된 고체들로 파악한다. 여자가 남성 중심의 이론과 언어에서 지워져 오로지 비남성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유체도 과학으로부터 지워져 오직 비고체로서만 존재한다.” 그 밖에도 뤼스 이리가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 = mc²은 [[광속]]에 특권(privilege)을 부여하기 때문에, 성별이 정해진 공식(sexed equation)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오해인게 현실에서 척, 마일, 미터가 모두 길이를 재는 단위이듯이 상대성 이론에선 시간과 공간 단위를 동일하게 취급하여 c = 1 = '곱셈의 [[항등원]]'으로 놓는다. 다만 일상에서는 편의를 위해 시간의 길이를 잴 때 299 792 458 미터 = 1 초로 환산하다 보니 광속이 299 792 458 미터매초 라는 이상한 숫자가 나와 이런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적극 수용한 일부 극단주의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수학과 과학이라는 학문 전반을 남성중심적인 학문으로 간주하고 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들의 이러한 모습은 [[심슨 가족]]의 'Girls Just Want to Have Sums' 에피소드에서 풍자되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이러한 행태로 인해 90년대에 발생한 사건 중 하나가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이다. 그러나 해당 사건 이후에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에서는 오히려 [[반과학]]적 성향이 더 짙어졌다. 이는 대체로 과학 이론도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든지, [[과학자 사회]]의 임의적 합의에 불과하다든지, 전문가들이 담당하는 분야에도 [[민주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이를 이용해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은 일정한 [[사실]]과 반지성주의를 섞어내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연구 결과는 적극적으로 사용하다가, 불리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 과학 역시 [[정체성 정치|서구 문명의 제국주의적, 압제적, 자본주의적 백인 남성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몰아 붙이는 것이다]]. [[이성(철학)|지적 성실성]]보다는 [[이념]]과 [[정치]]가 우선이라는 논리. [[미국]]의 [[언론]], [[인문학]]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기 때문에 [[지식인]]의 이름으로 반지성주의적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렇듯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반지성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근간이 된 사상들인 [[상대주의]]나 [[다원주의]] 또는 [[회의주의]]나 [[해체주의]]라는 사상들 그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사상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반론도 존재한다. 철학적으로 상대주의·다원주의나 회의주의·해체주의의 경향을 보인다고 하여 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라 간주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부당한 '''[[비난]]'''이라는 것이다. 이는 [[상대주의]]·[[다원주의]]나 [[회의주의]]·[[해체주의]] 자체도 [[이성(철학)|이성]]에 의존하여 비판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지적이다. 어떤 사상을 반지성주의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문]]이나 이성에 회의적일 뿐만 아니라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이성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지성주의적 성향에 대한 비판도 바로 그렇게 이성보다 다른 무언가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지성주의를 이유로 상대주의·다원주의나 회의주의·해체주의라는 사상들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와 완전하게 동일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 역시 나오는 것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회의주의]]와 같은 사례의 경우에는 그것을 반지성주의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자면 회의주의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로 간주하게 되면 그 회의주의의 일부인 [[과학적 회의주의]] 역시 반지성주의로 간주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과학적 회의주의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과학]]적 성향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회의주의 중에서도 과학적 회의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반지성주의와는 가장 상극인 사상인데, 이를 회의주의의 일부라는 이유로 반지성주의라고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올바른 비판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