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난(킹덤) (문단 편집) == 기타 == 작가는 방난을 도가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리고자 한 것 같다. 물론 통상 알려진 노장사상과는 차이가 있고 작중에 작가의 해석을 가미해서 조금 관점을 비틀어낸 도가이다. 다만, 원리적으로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사상이므로 킹덤에서의 해석도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킹덤에서 창작한 집단인 구도자들은 세계관 내에서는 도가의 원류로 제시된 것으로 보이고, 도가의 신선주의 같은 모습과 일맥한다. 도가는 원래 법가와 가장 배치되는 카운터와도 같은 사상이며, 법가야말로 진시황 영정이 내세우고 있는 사상이다. 킹덤에서는 진시황이 주역이라도 법가 자체를 최고로 두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이는 작중에서 진시황 스스로도 품고 있는 모순이기도 하다. 분명 진시황의 출발점은 여불위와의 논쟁에서는 인간의 빛을 믿고 의지를 계승해나가는 것이라고 언급되었는데, 진시황은 작중 중화를 통치할 논리로 법가를 택했다. 각각을 놓고 보면 좋은 논리처럼 묘사되었지만, 유가로 출발해 법가로 결론을 내린 듯한 모습이다. 왜 이게 중요하냐면, 유가는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인간은 선하거나 선하게 될 수 있고 그 선함을 바탕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은 반면 법가는 영성교와 여불위가 말한 인간의 악성에 대한 체념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들어가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이신과 진시황 모두 인간의 빛을 긍정하지만, 정작 진시황이 법가를 중심으로 나라를 통치하고자 한 것은 인간불신 내지는 자기부정으로도 비칠 수 있는 모순인 셈이다. 그렇기에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할 수는 있어도 통일한 제국을 이어나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최종적으로 제자백가 중 살아남은 사상은 중원에서 법가를 끈질기게 부정해온 유가였으니까. 엄정한 법가와 병가로 나라를 통치했다는 유비와 제갈량도 유가에서 말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려를 중심으로 법을 집행했기에 각박하지 않고 엄정함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며 숭상했다. 본인의 데뷔전이 된 마양 전투 당시 [[만극]]을 자기 부장으로 선택했다. 방난이 아예 돌대가리가 아니라 나름 인재를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이다. 조나라 장군 중에서 만극만이 유일하게 방난의 선택을 받았다. [[오봉명]]의 언급에 의하면 대외적으로는 [[화룡칠사]] 중 1명이 삼대천 방난과의 싸움에서 얻은 부상으로 죽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는 화룡칠사끼리 내전을 벌이다가 자백의 손에 죽었으나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방난 때문에 죽은 것으로 조작된 것이다. 물론 방난 입장에서는 자기랑 만난 적도 없는 놈이 자기랑 싸운 것 때문에 죽었다는 헛소문이 퍼졌으니 어이가 없을 것이다.~~방난둥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