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정환 (문단 편집) === 사망 === 1930년대 중앙유치원 사범과(現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에서 아동문학을 가르친 기록이 있다. 하지만 본디 허약한 체질이면서 너무 열성적으로 활동한 탓에 건강이 심하게 나빠졌는데, 평소 [[폭식]], [[골초]] 등 나쁜 생활 습관이 있었던 것까지 더해[* 글을 쓰고 손님을 맞이하고 외출할 때 항상 [[담배]]를 손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특히 1931년부터 지병인 [[고혈압]]과 신장염이 악화되었고, 결정적으로 [[동아일보]]의 <신동아> 창간으로 인해 <개벽>의 판매 조직이 와해되고 많은 빚을 지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겹친 데다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않고 어린이들을 위해 바쁘게 활동하다 보니 자리에 눕게 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683277545877.jpg|width=100%]]}}}|| ||<:>{{{-1 방정환의 장례식.}}} || 결국 1931년 7월 9일에 사무실에서 코피를 쏟으면서 쓰러졌고, 입원한지 2주가 된 7월 23일, 향년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고혈압과 신장염으로 별세했다.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문간에 검정 말이 모는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 왔으니 가야겠다.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 >---- >방정환의 유언[* 이 유언은 현대에 '검은마차 노래 괴담'의 모티브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학원기이야담/괴담#s-13|문단]] 참조.]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슬하에는 방운용(方云容, 1918 ~ 2002) 전 색동회 부회장, 방하용(方夏容) 등 두 아들을 두었다. 묘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의 [[망우역사문화공원]][* [[한용운]], [[이중섭]] 등의 묘와 함께 있다.]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봉분 대신에 자연석들을 두르고 그 위에 묘지석을 얹어 놓은 형태의 [[돌]]무덤이다. 그의 묘비에는 '동심여선(童心如仙)'[* 아이 마음은 [[신선]]처럼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 방정환의 묘비명인 '동심여선'은 <[[맹꽁이 서당]]>의 작가인 [[윤승운]] 화백이 사인을 할 때마다 반드시 사용하는 글귀이다.]이라는 [[글씨]]가 크게 써 있고 밑에 '어린이의 동무 소파 방정환의 묘'라고 쓰여 있다. 최근에는 '중랑구방정환교육지원센터'라는 사업을 통해 방정환을 기리고 있는데, 정작 방정환은 중랑구와 아무 연관도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