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배드핑거 (문단 편집) === 활동 후반기 : 워너 레코드 시절 === 한편, 워너 레코드로 새 둥지를 튼 밴드는 당시 신참 프로듀서였던 크리스 토마스[* 훗날 [[섹스 피스톨즈]]와 [[펄프(밴드)|펄프]] 등의 앨범을 프로듀스하게 되는 사람이다.]를 영입하고 애플 시절보다 빨라지고 복잡해진 사운드를 시도하는 등 당시 이들에게 붙여진 '비틀즈에 의해 키워진 제2의 비틀즈'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1974년]] [[2월]]에 발매한 워너와의 첫 앨범 는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다음 앨범인 제작 도중 조이 몰란드와 피트 햄의 관계가 악화되어 밴드는 해체 직전까지 가게 된다. 사실 그전부터 밴드의 리더인 피트 햄과 자유분방한 성격의 조이 몰란드 사이에는 충돌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매니지먼트 문제로 둘 사이는 완전히 멀어져버렸다. 스탠 폴리와 재계약을 할 시점이 되자 조이 몰란드는 그간 스탠 폴리가 행한 밴드의 매니지먼트에 대해 불만을 품으면서 자신과 자신의 아내가 직접 밴드의 매니저먼트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밴드의 리더였던 피트 햄은 스탠 폴리를 계속 고용하자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둘의 갈등은 피트 햄이 밴드를 탈퇴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피트 햄의 빈자리는 기타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인 밥 잭슨이 가입함으로써 채워지게 된다. 하지만 워너 측에서 밴드의 리더이자 메인 송라이터[* 의 메인 멜로디를 포함하여 , , 등 밴드의 히트곡 대다수는 다 피트 햄이 작곡한 것들이었다.]인 피트 햄이 밴드에 돌아오지 않으면 밴드와의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피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솔로 1집 작업 도중 다시 밴드로 돌아와 새 앨범 녹음에 참여한다.[* 결국 피트 햄은 생전에 솔로 앨범을 녹음하지 못했다. 그 대신 피트의 사후, 그의 유족들이 피트가 생전에 녹음해 놓은 데모들을 2장의 앨범으로 나눠서 발매하였다.] 하지만 피트 햄과 조이 몰란드의 관계는 계속 좋지 않았고 피트 햄이 밴드로 돌아온 직후 이번에는 조이 몰란드가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 이후 밴드는 밥 잭슨을 재가입시켜서 [[1974년]] [[11월 15일]] 를 발매한다.[* 에 수록된 라는 곡에서는 당시 크리스 토마스가 배드핑거와 동시에 프로듀싱하던 [[사디스틱 미카 밴드]]의 카토 미카가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앨범이 발매된 지 7주 후인 [[1975년]] [[1월]], 밴드의 매니저였던 스탠 폴리가 워너와의 계약금을 들고 잠적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워너사와 밴드의 계약서에는 계약금 3백만 달러 중 250만 달러를 에스크로 계좌(에스크로 계좌(Escrow account)란 일반적으로 계약에 서명하거나 위탁 상품을 납품했을 때 일정 조건에 이를 때까지 결제금액을 예치해두는 계좌를 말한다.)에 보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스탠 폴리는 밴드 멤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자신이 몰래 이 계좌를 관리하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워너 측은 스탠 폴리를 고소하는 한편 앨범을 절판시키고 밴드와의 계약을 파기한다.[* 거기다가 불과 1년후 당대 최고의 인기 밴드였던 [[핑크 플로이드]]가 동명의 앨범인 [[Wish You Were Here]]을 발매해 히트를 치는 바람에, 현재 배드핑거의 Wish You Were Here 앨범은 완전히 묻혀버려서 인지도도 낮고 자료도 찾을래야 찾기 어렵다. 당장 구글에 "Wish You Were Here"을 검색하면 과장이 아니라 배드핑거 관련 자료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배드핑거의 멤버들은 영문도 모른채 투어를 돌던 도중 갑작스럽게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으며 영국으로 돌아온 밴드 멤버들, 특히 피트 햄은 자신이 신임했던 매니저인 스탠 폴리가 횡령을 저지른 후 잠적했다는 소식을 듣자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자신의 팔과 손에 [[담배빵]]을 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피트 햄은[* 더욱이 당시 피트 햄은 [[서리주]] 워킹에 3만 파운드를 주고 새 집을 마련한 상태였고 부인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28번째 생일의 4일 전인 [[1975년]] [[4월 23일]], 톰 에반스와 함께 [[펍]]에서 [[위스키]] 10잔을 마시고 다음날인 23일 새벽 3시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 날 아침, [[27세 클럽|차고에서 목을 매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의 유서에는 당시 임신중인 아내에게 자신이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것, 스탠 폴리를 제고용하자고 주장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 밴드를 배신하고 밴드의 돈을 가로챈 매니저 스탠 폴리[* 스탠 폴리의 사기 행각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1991년,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카운티]]에서 비행기 엔진 제조 회사 설립 명목하에 항공 엔지니어 피터 브록에게 25만 달러를 받고 도주했다가 잡혀서 자금유용 및 돈세탁 혐의로 집행 유예 5년을 선고 받으며 25만 달러를 모두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스탠 폴리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배상금 전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스탠 폴리는 2009년 7월 20일에 87세로 사망했다.]에 대한 분노, 음악 비즈니스에 대한 억하심정이 담겨 있었다. 유서 말미에는 "스탠 폴리는 영혼조차 없는 [[개새끼]]다. 내가 그를 지옥에 데려가겠다."라고 써져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