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배종대 (문단 편집) == 여담 == * 학부 시절 우등생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고 한다. 공부는 도외시하고 맨날 여기저기 놀러다녔다고 하며 학점도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1985년에 고려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고 하자, 그 소식을 들은 정대후문 근처 어느 [[하숙집]] 할머니께서는 "뭐라고? 배종대 그 녀석이 고대 교수가 됐다고? 말도 안 돼!!"라 외치셨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 일단 본인부터가 학창시절 그닥 모범생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다른 고법 교수들과는 달리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 '노오오력하라'는 말을 거의 안 하는 교수로 통했다. 그보다는 '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라'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하는 사람이 돼라'는 말을 평소 많이 했다. 강의도 마찬가지로서, 다른 교수들(예를 들어 [[김일수|이분]])이 학생들에게 죽어라 열심히 경청하지 않으면 듣기가 힘든, 지루하고 빡빡한 강의를 많이 했던 반면, 배종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연스러운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강의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내용적으로 충실한 수업을 했기 때문에, 그의 강의는 고대법대의 대표적인 명강의로 꼽혔다. 아쉽게도 2015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학부생 강의는 열지 않으며 은퇴 준비를 한다고 밝혔다. * 그의 강의에서 절대적으로 금기시 하는 것은 바로 '''지각'''이다. 일단 지각을 하면 법대 강의실의 강단 양옆에 출입문이 있기 때문에 시선이 그 쪽으로 쏠리며 자신의 강의가 방해받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은 강의시간을 약속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예고없는 휴강을 하지 않으며, 또한 수업시작을 정시에 하는 것으로 학생들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 한다. 지각을 할 바에야 차라리 결석을 하라고 하며, 대신 결석을 한다고 하여 점수를 깎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출석을 부르지 않고, 가끔씩 제출하는 10분 글쓰기, 15분 글쓰기 등으로 이를 대체한다.) 실제로 학기 초에 지각한 학생들에게 매섭게 호통을 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운동권 학생들과 교류가 두터웠고, 당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보기 드물었던 야권 성향의 교수로 분류되었다. 또한 [[마르크시즘]] 법학이론에도 상당한 식견을 보여주는 등 앞으로 한국에서 본격적인 사회주의 형법이론의 선구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모으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사회비판적인 시각이 많이 약화되었고, 노조탄압과 집회시위제한 등 각종 정치현안에 대한 참여적 발언을 자제하여 운동권 학생들의 존경을 많이 잃었다. * 본디 대학교수가, 그것도 유명대학의 교수가 학원에서 강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고시생을 위한 학원강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도 뺄 생각은 안 하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사회현안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와 이에 대한 형법학적 접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여 화제가 되었다. * 소위 교과서법학(가령 [[양창수|모 대법관]]은 '우리나라 법학자들은 교과서만 쓰고 연구는 하지 않는 듯?'이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에 대해 '그게 뭐 어때서?'라는 쿨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교과서 내지 연구서가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 내용이 자기만의 독특한 학문적 경향을 반영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특별히 그런 것이 없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일정한 학문관은 태어나면서 가지는 것도 아니겠고, 계속 연구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 : 형법총론, 제5판(1999) 머리말) * 2002년 5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활약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기대하였던 학생들의 소망과는 달리, 비교적 지엽적인 주제만 건드리면서 화려한 글솜씨만 선보이다가 칼럼을 마치고 말았다. 특히 2002년 10월 25일의 칼럼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055/3/70040100000055/20021024/7875579/1|'사법시험 소송공포증']]에서는 "소송은 ‘진실’ 규명을 목적으로 하고 학문은 ‘진리’ 탐구를 위해 존재한다. 시험은 학문 세계의 테스트 방법이다. 진리를 가늠하는 방편으로 이용되는 수단이다. ‘진실’은 하나이지만 ‘진리’는 그렇게 명쾌한 답변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인간이 무엇이고,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진리’를 말하지 못한다. 대학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 탐구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르치는 곳일 뿐이다. 시험은 ‘잠정적 진리’를 테스트할 수밖에 없다. [...] 그러므로 시험문제의 정답에 대한 ‘합의’는 이 부분의 전문가인 학자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이 순리라고 할 수 있다."(?)는 다소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고시생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이로 인해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배종대 교수에 대한 원색적인 욕설이 넘쳐나기도 하였다.[* 아마도 배종대 교수는 출제오류로 소송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법학교수들이 곤욕을 치르는 게 못마땅하여 짜증이 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출제를 잘못한 교수들의 [[자업자득]]일 뿐이며, 이를 교수들의 학문세계에 대한 무시로 봐서는 안 된다 할 것이다. 배종대 교수가 뭔가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은 부분이고, 이 정도면 현실감각이나 학생들과의 소통의지를 거의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으로 보일 정도이다. 배종대 교수의 괴팍한 주장과는 달리, 이러한 출제오류의 문제는 학문적 논쟁과 전혀 무관한 것이다.] * 2004년 이후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온라인 강의실 ‘형법교실’을 운영한 바 있다. [[홈페이지]] 개설 당시 이미 50대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어느 법과대학 교수들보다도 더 성공적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법대 교수들이 만든 홈페이지의 대부분이 약력과 저서소개가 주를 이루고, 온라인 강의가 있다고 해도 빈약한 것이 다수였지만, 배종대 교수의 홈페이지에는 약력이나 저서 소개가 한 줄도 없이, 강의자료와 질의 응답, 교과서 개정분 등으로 내용이 채워졌다. 특히 매주 수업한 내용을 [[스트리밍]] [[오디오]] 형태로 들을 수 있는 ‘음성강의’는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그 후 위 홈페이지(http://www.profbae.com)는 2014년 [[https://cafe.naver.com/profbaelaw|네이버 카페]]로 이전되었는데, 예전처럼 활발한 업로드가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여전히 운영이 계속되고 있다. * 2009년 이후로는 형사실정법과 형사정책에 관한 첨예한 법적 문제를 연구하는 대신, 한국법사상에 관한 논문들을 주로 발표하고 있다. 발표지면도 주로 '고려법학'에 한정되고 있는데, 50대 후반 이후 형법학자로서의 생명력은 이제 거의 끝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법사상 관련 논문들 제목을 보면 '[[세종(조선)|세종]]의 호학(好學)', '세종의 형법사상', '형법과 불교사상', '법치국가형법과 불이(不二)사상', '원효(元曉)의 화쟁(和諍)사상과 형법이론' 등이다. 형법이론에 한국법제사 또는 한국법사상을 접목한다는 시도 자체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나, [[견강부회]]가 너무 많고 학술논문으로서의 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는 평가이다. * 학부생들이 붙여준 별명은 초기에는 '배종'''D'''교수님'이었다. 학점에 대해 아주 약간의 자비가 생긴 뒤로는 ''''B'''종대교수님'으로 바뀌었다. 2015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30년 간의 학부 강의를 끝마치겠다고 하였다. 마지막 수업시간에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는 이야기들을 첨언하였고, 학부생들에게 남긴 당부의 말은, 의외로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이었다. * [[메가스터디]]의 영어강사인 [[조정식(강사)|조정식]]의 말에 따르면, 고려대 법학대 학부생 시절, [[배종대]] 교수의 수업 전날 과음을 한 뒤 수업을 듣다가 강의 시간에 토를 했다고 한다. 그 때가 3월 초라 추워서 창문도 못여는 바람에 냄새가 너무 나서 4시간 연강이었던 수업을 휴강시켜버렸다고 한다.--말이 안나온다.--그 뒤로 학교에서 영웅 취급을 받으며 같이 수업듣던 친구들이 자기를 보면 매번 박수를 쳤다고 한다.[[https://theqoo.net/square/604421857|링크]] * 형사소송법 등의 본인 저서를, 이제 제자인 홍영기 교수가 넘겨받은 것으로 보인다. 2021년 5월에는 판례집을 출간했다.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170377|#]] [[분류:대한민국의 사회과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경상남도 출신 인물]][[분류:1952년 출생]][[분류:고려대학교 출신]][[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