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남준 (문단 편집) == 여담 == * [[2010년]] [[7월 20일]]에 [[구글]]에서는 그의 탄생 78주년을 기념하여 [[구글 두들|로고를 특별히 제작하기도 했다.]] [[파일:/logos/paik10-hp.gif]] * 미국의 [[빌 클린턴]],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실수를 범한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 방미에 맞춰져 [[백악관]]에 초대된 백남준은 [[https://www.youtube.com/watch?v=o19m2UjTo9A|빌 클린턴 대통령 면전에서 그와 악수하다가]] [[하의실종|바지가 흘러내렸다]]. 당시 백남준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지체장애인이 되어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악수 직전에 바지가 흘러내린 것. 그것도 아무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였다. 단순한 실수였다고는 하는데 당시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백남준은 이에 대해서 "My pants dropped. That’s all.(바지가 흘러내렸다, 그게 다야)" 라고 말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모니카 르윈스키|연이은 섹스 스캔들]]에 시달렸던 클린턴을 '빗대어' 이 같은 '퍼포먼스'를 했다거나 'Electric hightway(전자 정보 고속도로)'라는 단어를 클린턴이 마음대로 가져다 사용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등 각종 설들이 나왔다.[* 클린턴의 스캔들을 비꼬아 사실 클린턴은 주위 사람의 바지를 벗기는 힘이 있기 때문에 백남준이 당한 것이라는 드립도 나왔었다.] 이 당시 백남준이 바지를 잡고 입장하다가 놓은 점이나, 바지가 흘러내린 이후에도 백남준의 표정이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러한 설들이 더 부추겨진 면도 있는 듯. 그러나 이미 1998년은 한 번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이기에 표정 변화가 없는 점은 감안할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해 그의 행위예술가적 행보를 잘 알고 있는 서양에서는 항의 내지 풍자성 행위 예술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아예 이를 포스터로 쓰며 그를 '[[트릭스터]]'로 칭하기도 했다. 기다리고 걸어오기까지 하다 하필 빌 클린턴 앞에서 했다는 것이 타이밍도 너무 절묘해서 실수가 아닐 것이라 보는 이들이 많긴하다. [[파일:백남준 예술적 '하의 실종'.jpg]] * 원로 코미디언 [[백남봉]]과 앞글자 두 자가 동일하고 연령대도 비슷한 데다[* 백남준은 1932년생, 백남봉은 1939년생으로 두 사람은 7살 차이밖에 안 난다.] 두 사람 모두 국내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진 관계로, 80~90년대에는 대중들이 두 사람의 이름을 은근히 헷갈리거나 [[백남봉]]이 백남준의 [[짝퉁]] 취급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참고로 백남봉의 본명은 '박두식'으로 '백남봉'이라는 이름은 연예인 활동용 예명이었는데, 백남준이 국내에 알려지기 십여 년 전부터 이 예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백남준의 명성을 노린 것과는 전혀 관계 없다.] 물론 2006년 백남준의 작고와 더불어 2010년 백남봉의 작고로 이런 혼란은 완전히 사그라든 듯 하다. * 일본의 작곡의 신이자 [[YMO]]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YMO의 PV를 보면 백남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걸 볼 수 있다.[* 실제로 사카모토 류이치는 백남준에 대한 존경을 담은 헌정곡 'A tribute to NJP'라는 곡을 작곡해 자신의 앨범에 수록한 바 있다.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 등에 비교해보면 다소 전위적인 곡.] * 현재도 백남준의 영향력은 미술사, 예술가, 음악가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발휘되며, Martin garrix - Yottabyte 뮤비에서 나온 비디오 아트, 이은결 마술사의 일부 마술 트릭도 다 백남준 미술가가 개척한 장르라고 하는 걸 생각하면, 전공자가 아닌 사람한테 생소한 현대미술이라는 장르를 대중들한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사람 중 한 명임을 알 수 있다. 비디오 아트가 여기저기서 재해석되면서 의외로 대중에게 친숙해졌다. * 브라운관의 수명이 다하면서 그의 대표 작품인 [[다다익선(백남준)|다다익선]]의 보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 [[1998년]] 예술계에 기여한 그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 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수상했다. [[한국계]]로서는 두 번째 괴테 메달 수상자이다. 첫 번째는 작곡가 [[윤이상]]. * 최경한 서울여대 명예교수(서양화가)와 [[경기고등학교]] 47기 동기생이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반에서 같이 활동했다. 백남준 사후 백남준미술관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았다. 고교 1년 후배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도 친분이 있었다. * 백남준의 작품과 관련해서 미술평론가 손철주가 쓴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책에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1992년 8월 한 화가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에 갔다가 본 광경으로, 두 여고생이 전시된 작품들 중 속을 뜯어낸 진공관식 TV 속에 촛불 하나가 켜진 〈TV 촛불〉이라는 제목의 작품 앞에서 대화를 하고 있더란다. 이 때 한 쪽 여고생이 "야, 이것도 예술이냐?"라고 묻자 옆에서 함께 구경하던 다른 여고생 曰, "아니, 예술이 아니고 기술이지. 일주일 전에 봤던 촛불이 아직 안 꺼졌잖아." * [[https://njp.ggcf.kr/%EB%B0%B1%EB%82%A8%EC%A4%80%EC%95%84%ED%8A%B8%EC%84%BC%ED%84%B0-%EB%8B%A8%ED%96%89%EB%B3%B8%E3%80%8E%EB%B0%B1%EB%82%A8%EC%A4%80-%EB%A7%90%E9%A6%AC-%EC%97%90%EC%84%9C-%ED%81%AC%EB%A6%AC%EC%8A%A4/|백남준 : 말馬 에서 크리스토까지]]라는 책이 있다. 백남준의 글을 모아 놓은 총서인데, 백남준의 생전 생각과 아이디어를 잘 볼 수 있다. 방대한 관심사와 깊은 지식, 무엇보다 이를 엮어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돋보인다. *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넷플릭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우리 사이 어쩌면》여주인공인, 알리웡의 전남편, 저스틴 하쿠타의 아버지가 백남준의 조카 켄 하쿠타이다. 백남준 일가는 친일행적으로 [[일본]]으로 망명간뒤에, 귀하하고 백씨성을 하쿠타로 개명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이민갔다. 백남준의 사후, 유산처분을 주도한 것이 켄 하쿠타라고 한다. [[분류:경기고등학교 출신]][[분류:도쿄대학 출신]][[분류:프랫 인스티튜트 출신]][[분류:뮌헨 대학교 출신]][[분류:행위예술가]][[분류:비디오 아티스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1932년 출생]][[분류:2006년 사망]][[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미국의 불교 신자]][[분류:금관문화훈장]][[분류:프랑스 문예공로훈장]][[분류:수원 백씨]][[분류:미국으로 귀화한 인물]][[분류:뇌혈관질환으로 죽은 인물]][[분류:국제결혼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