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남준 (문단 편집) === 비디오 아트 === B급 예술가로 치부당하는 와중에도 백남준의 인지도는 꾸준히 쌓여가고 있었고, 기괴한 퍼포먼스를 하며 조금씩 시도했었던 [[비디오 아트]]는 점점 백남준의 예술 세계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백남준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만 알고 있는데,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볼프 포스텔(Wolf Vostell)이 먼저 TV를 사용하긴 했는데, 포스텔은 TV를 끈채로 부수기만 했다.][* 그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 역시 비디오아트를 했는데 어느 유명 예술잡지에서 비디오아트를 소개하며 구보타 시게코의 작품을 맨 처음 소개한 적이 있다. 백남준은 이를 보며 굉장히 투덜거리고 자존심 상해했다고 한다.] 1974년부터 비디오 아트 설치 작업을 선보였으며, 영상이 지상파 TV에 방영되는 등 점점 유명해지고 예전과 다르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결국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전시되었고, 뉴욕 뿐만이 아닌 미국 예술계에 큰 인지도를 얻게 된다. 이때부터 백남준은 바쁘게 활동하였다. 1979년부터 1996년까지 17년 간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 조각과 교수로 있었는데, 뉴욕에서 작품활동하느라 바빠서 학생들을 자주 보지 못해 미안해 했다고 한다. ||{{{#!wiki style="margin:-5px -10px" [youtube(7UXwhIQsYXY)]}}} || || Nam June Paik - Global Groove, 1973 || 위 작품은 1973년 백남준이 선보인 Global Groove라는 세계 최초의 뮤직비디오중 하나이다. 당시에는 영상을 편집할 수 있는 장비가 없었는데, 신디사이저라는 영상편집장비를 일본기술자와 함께 직접 만들어서 그 장비를 이용해 만든 작품이다.[* 신서사이저 하면 떠올리는 현대 음악에 널리 쓰이는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와는 초기 전기장비란 점에서 뿌리는 같지만 생김새도 사용법도 전혀 다른 물건이다.] ||{{{#!wiki style="margin:-5px -10px" [youtube(WJUS6umKPzw)] [youtube(ukFqOyiZYyw)]}}} || || The Allen Ginsberg Project - Good Morning, Mr Orwell! (Complete Video)[* 초반부에 등장하는 노래는 [[로리 앤더슨]]의 Excellent Birds. 같이 부르는 남자는 [[피터 가브리엘]]로 2년 후 가브리엘의 앨범 [[So]]에 This Is the Picture (Excellent Birds)라는 이름으로 수록된다.] || [[1984년]] 새해 벽두에 전세계 동시송출된 <굿 모닝 [[조지 오웰|미스터 오웰]]>[* 이름이 왜 이런지는 영미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1984(소설)|알 수 있다]].] 의 풀 버전 영상.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 프로그램'''인데다 더불어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의 '''다원생중계'''였다! 훗날 이 작업은 인공위성 예술의 대표적 사례로 불리게 된다. 연출은 영화 [[더티 댄싱]]과 [[시스터 액트]] 감독으로 유명한 에밀 아돌리노가 맡았는데, 그는 더티 댄싱 감독 이전에 아카데미상다큐멘터리 부문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이쪽 작업에도 능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편성표상은 1월1일)1월 2일 새벽 1시에 KBS1에서 방송했는데(위 영상이 KBS의 중계 버전이다.) 수파(자막)와 더빙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영미권과 달리 KBS에서 미리 소스를 받아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음악가의 전설로 남은 [[존 케이지]]가 나오는가 하면[* 상술한 대로 백남준의 스승이기도 했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배우 [[이브 몽땅]]이 신나게 탭댄스 추며 노래도 부르고, 현대무용의 거두이자 '뉴 댄스'의 창시자인 머스 커닝햄, [[살바도르 달리]]까지 이곳에 등장한다. 후반부에 진지하게 [[첼로]]를 키는 장면은 압권. 전반적인 스토리는"'''오웰, [[1984(소설)|당신이 예측한 억압과 광기의 시대]]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현재를 잘 살고 있다.'''"로 전개된다. 실제로 소설 1984에는 발달한 과학이 텔레스크린같은 것처럼 오히려 인류를 옥죄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데, 백남준은 발달한 과학을 이용해 예술의 새 지평을 연 셈. 예술의 신기원을 열면서 동시의 영미문화의 대작가를 비판(혹은 비평)하고, 아울러 현대 과학의 발전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갖춘 셈인데, 이렇게 보고 위 동영상을 보면 소름이 쫙 돋는다. 오직 1984년에만 할 수 있는 예술인 셈이다. 1986년에는 <바이 바이 키플링>이라는 작품으로, [[러디어드 키플링]]([[1936년]] 졸로 당시 사망 50주년)의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 동양과 서양은 절대로 서로 어울릴수 없다'(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ver the twain shall meet)는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주제로 도쿄, 뉴욕, 서울의 '서구'와 '비(非)서구'의 모습을 순서 없이 뒤죽박죽 방영하면서 동양과 서양 모두 동일한 시간축에 살고 있음을 역설하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 상대를 봤을때 신기하고 자기들 끼리는 비슷비슷해보이는 것 처럼, 제3의 생명체가 봤을떈 동양과 서양 둘은 쌍둥이처럼 같아보인다는 논리이다. [[오리엔탈리즘]]을 철저하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딕 카벳과 류이치 사카모토가 출연하기도 했다. KBS1, TV아사히, WNET 의 세 방송사에서 방송되었다. [[PBS]], [[NHK]]에서 방송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다만 <바이 바이 키플링>은 당시 한국에서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얻었는데, '1등을 달리고 있는 일본인 마라토너의 모습'등 아시아의 문화적 선두주자는 일본이라는 암시가 포함된 장면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 영화등 주류 일본 문화가 금지되어 있던 한국의 입장에서 이런 메세지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고, 언론에서는 백남준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잠시 일었다. 그렇지만 올림픽을 앞두고서 결국 다시 백남준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게 된다. [[1988 서울 올림픽]] 1주일전, <[[손에 손잡고]]>라는 작품으로 2년전의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더 많은 참가국가로 극대화 시키며, [[냉전]]의 시대가 끝났음과, 전세계의 조화와 공존을 담아내면서 백남준의 위성 연작 3부작의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한국 대중들에게 '백남준'이라는 예술가는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비로소 한국에 알려지게 된다. 사실상 한국은 백남준에 대해서 역수입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백남준이 일본에서 뉴욕에 가기까지는 한국에서도 무명이었고, 그가 현지에서 악평을 들을 때도, 유명해지고 세계적인 수준에 오를 때 까지도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백남준보고 세계적인 예술가라고 해도 한국에서는 실감이 안나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박하(동음이의어)|박하]] 줄거리, [[허영만]] 그림인 만화 [[비트#s-6.1]]를 보면 여주인공 로미의 부모가 부자인데 80년대 백남준 관련 작품을 티브이로 보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모르면 수준이 낮다고 할테고 이런 생각으로 작품을 보면 당황해하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랴부랴 일본으로 출국하여 독일과 미국 등 세계 여러나라를 떠돌다 34년만인 1984년에 다시 고국을 찾았을 때 한 기자가 '왜 한국 무대를 놔두고 외국 무대에서만 활동하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는 수출이 필요해요. 나는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문화 상인입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 점이 백남준이 한국에서 이름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앞서 서술했다시피 백남준은 권위주의나 군국주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어떻게 보면 냉전을 직격으로 맞은 한국 사회에서는 불온시되는 사상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윤이상이 [[동백림 사건]] 이후로 한국 대중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이 박히며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된 반면 백남준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프로그램이 TV로 방송되기 이전까지는 전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덕분에 한국 대중들에게 백남준이라는 이름이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attachment/aecb2780a4d0387cb7d4528a36297c36.jpg|width=100%]]}}} || || ▲ [[다다익선(백남준)|다다익선]], 1988년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한국에서 백남준은 초기의 악동 행위예술가 같은 이미지는 거의 없고, 88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다다익선 같은 작품처럼 오로지 [[텔레비전]] 여러 대를 이용한 비디오 아트의 이미지만 강하게 남아있다. 흔히 비디오아트라 하면 정신사납거나 아름다운 영상물을 생각하기 마련이나 다다익선처럼 TV를 쌓아두는 비디오 설치 작업도 많이 했다. TV를 쌓아 역사 속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을 가져와 [[https://prenjp.ggcf.kr/archives/artwork/n230|그 사람들의 조각상]]을 만들기도 했다. 마르코 폴로, 징기스칸, 알렉산더 대왕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동서양을 가로지른 대표적인 인물이다. Television이란 말 자체가 원거리를 가로지른다는 의미가 있으니, TV에서 이들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https://njp.ggcf.kr/collections/205|TV부처]]라는 작업도 유명하다. 불상을 두고, 그 앞에 CCTV를 설치하였다. 명상하는 부처가 TV를 통해 자기 모습을 들여다 보는 굉장히 묘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존재한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보여지는 모습, 영상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비디오 신디사이저라는 작업도 했는데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그에 맞춰 TV에 입력된 영상이 송출되고, 동시에 실시간으로 합성되는 장치다. 일본의 공학자 아베 슈아와 함께 만들었다. 이러한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방송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그의 비디오 아트는 바이바이 키플링, 굿모닝 미스터 오웰처럼 영상의 내용적인 면으로도 분석할 수 있지만 영상 작업의 구조와 형태 자체로도 분석할 수 있다. [* 굿모닝 미스터 오웰도 영상 내용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으나 인공위성을 이용한 최초의 전세계 생중계라는 것에서도 의미가 크다. 특히 1984의 빅브라더를 TV에 대입하면 인공위성을 이용한 방송 송출은 빅브라더의 역량을 훨씬 강화해주는 장치다. 이를 이용하여 조지 오웰에게 안부를 묻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유쾌한 반론인 셈이다.] 브라운관 TV의 특성을 이용하기도 했다. 브라운관은 전자총을 쏘아 유리판에 발린 형광물질을 자극하여 영상을 보여준다. 백남준은 이를 직접 조작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냈는데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163792|TV를 위한 선]]과 같은 작업이 있다. 또한 [[https://youtu.be/UjTf2pIAZNM|자석을 갖다대어 이미지를 조작]]하거나 심지어는 관객이 직접 자석을 가지고 움직이며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일방향 매체의 대표격인 TV 앞에서 시청자가 직접 영상을 조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단순히 시청을 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TV에 참여하는 것이다. 백남준은 비디오 캠코더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의 글을 보면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영상을 만들고, 이를 송출하고, 즐기는 것을 꿈꿨는데 오늘날의 유튜브와 같다. 그는 TV를 이용해 작업을 했지만 TV를 두고 TV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원거리의 소통과 영상물/비디오 자체를 생각했다. 일례로 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작업도 했다. 멀리 떨어진 연인이 달을 보며 서로를 떠올리고, 서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비디오 아트 작업을 하는 데 많은 TV가 필요했는데, 활동 초기엔 [[소니]]에서 출시한 제품을 쓰다가[* 1965년 출시된 최초의 가정용 TV-비디오 결합기기인 소니 TCV-2010 사용자이며 여기에는 CV-2000 테이프 레코더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다. 백남준의 초기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지라 일본에서 나온 자료에는 빠지지 않고 이 말이 들어가 있으며 심지어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일본 유저들이 주석을 달아놓았다.] 어느 시점[* 88올림픽 전후 즈음으로 여겨진다. 참고로 삼성전자가 금성사의 아성을 뒤엎고 전면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으로, 1970년대는 "이코노"텔레비전 등 기술력보다는 경제적 이점에 치중하여 마케팅했다.] 이후로는 [[삼성전자]]의 협력을 받아 삼성 TV를 사용하였다. [youtube(oGW2NSmeme4)] 이 때를 즈음해서 삼성 텔레비전 광고도 찍었다. 백남준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오리지널 [[서울 사투리]]가 정겹다. ||{{{#!wiki style="margin:-5px -10px" [youtube(71CytirNP9g, width=400px, height=230px)]}}} || || 칠성사이다 CF 1편 - "기억하는 과거" || ||{{{#!wiki style="margin:-5px -10px" [youtube(486zzdA0uzA, width=400px, height=230px)]}}} || || 칠성사이다 CF 2편 "창조하는 현재" || [[1995년]] [[8.15 광복]] 5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제작된 [[칠성사이다]] CF에 출연하여 과거 칠성사이다의 CF 영상들과 시대별 영상자료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웅장함으로 뇌리에 깊숙히 남는 1편의 BGM은 가수 [[김수철(가수)|김수철]]이 작곡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 [[1월 1일]]로 넘어가던 새벽(미국 동부시간), 굿모닝 미스터 오웰 때와 마찬가지로 [[밀레니엄]]을 기념한 백남준의 작품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is Alive)"가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위성 생방송으로 동시 송출되었다. 한국에서는 [[CBS(미국 방송)|CBS]]와 뉴스 제휴 관계에 있는 [[MBC]]에서 중계했는데, 방송을 진행하던 [[손석희]][* 당시 MBC 아나운서국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앵커가 "시청자 여러분, '''텔레비전이 고장난 것이 아님'''을 재차 말씀드립니다."라는 멘트를 여러 번 하기도 했다(...). 사실 비디오아트의 특성상 아무런 코멘트 없이 영상만 보고 있으면 "이거 TV가 고장난 것 아냐?"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긴 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에도 "동방으로부터"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2006년]] [[1월 29일]][* 이날은 2006년 [[설날]] 당일이었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아파트에서 7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직전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132734|유언은 "맛있어, 맛있어"로 아내가 해준 장어 덮밥을 맛있게 먹곤 얼마 안가 눈을 감았다고 한다.]] 장례식은 평소 그의 기행(?)에 걸맞게, 슬픈 기운 없이 폭소 속에 이뤄졌는데, 사회자가 젊은 시절 관객들의 넥타이를 마구잡이로 잘라댔던 그의 이야기를 하자 조문객들 모두 폭소했고 그걸 그대로 재현하자는 제안에 참가자들 모두 메고 온 넥타이를 잘라 그의 관에 넣어 주고 웃으며 그와 작별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060327&plink=OLDURL|#]]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233750|#]] 그의 유해는 그가 주로 활동했던 한국, 독일, 미국에 분산되어 안치되었으며, 한국에 있는 유해는 [[봉은사]]에 안치되어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2&aid=0000111235|#]]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9395|#]] [youtube(dMiNX5No3q8)] 심지어는 사망 후에도 광고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사망 2년 후인 2008년 TV 전파를 탄 KT의 'show' 브랜드 광고 중 Mr.Innovative 편은 백남준 선생의 생전 퍼포먼스를 재편집한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디. 마지막에는 3D 모델링으로 재구성한 선생의 얼굴과 "쑈를 해라"라는 생전의 목소리가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