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남준 (문단 편집) == 평가 == >"백남준을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라고만 규정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20세기에 이미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을 내다본 선지자였으며 인공위성까지 동원할 만큼 엄청난 배포의 기획자였다. [[마셜 맥루한|마셜 매클루언]] 같은 문명비평가부터 [[데이비드 보위]] 같은 가수까지 전 세계 수많은 인사가 그의 친구였다. 백남준이 연하장을 보내는 이는 1000명이 넘었다. 그야말로 국제적인 스타였다." >---- >미술사학자 김홍희 [[http://luxury.designhouse.co.kr/in_magazine/sub.html?at=view&info_id=75121|#]] >"백남준이 한국에서 예술을 했다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이 되었을까? 나는 가끔 주변 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아마도 힘들었을 거라고. 아쉽게도 한국 사회는 [[남귤북지|귤을 맛있는 귤로 키우지 못하고 탱자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일찍 한국을 떠난 덕분에 한국인의 원형적 심성과 내면을 가장 잘 보존한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그가 만든 작품 앞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기억과 한국의 [[밈|문화적 유전자]]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 >[[이어령]][* 백남준과 오랜 세월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백남준이 높게 평가 받는 이유는 첨단기술매체와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상상하고 이를 예술로 표현했다는 점에 있다. 당시 예술가들이 [[Video Killed the Radio Star|텔레비전 같은 새로운 매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반기술주의|이를 배척하거나 파괴하는 작업]]을 선보인데 반해, 백남준은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전자회로 관련 기술도 직접 공부하고 아베 슈야 같은 기술자와 협력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작품 (1967-1968)을 만들기 위해 벨 연구소에서 [[포트란]] 언어로 코딩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백남준은 자신이 예술가가 되지 않았다면 물리학자(공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백남준은 저술이나 이론 작업도 꽤 많이 했다. '전자 고속도로'를 예견한다든지, '인포 아트'에 대해 논한다든지. [[인터넷]][* 전자와 고속도로란 명칭 때문에 [[하이패스]]를 연상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전자초고속도로를 통해 풍부한 정보를 접할 가능성이 있음'을 언급했기에 인터넷 혁명을 예견했단 것이 맞을것이다.]과 [[스마트폰]][* 누구나 손에 작은 TV를 가지고 다니면서 전자고속도로를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유튜브]]나 [[스트리밍]][* 영상산업의 종반엔 누구나 쉽게 영상을 찍어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이 일상화된 지금 읽어보면 당연하고 뻔하다 싶은 내용을 써놓은 경우가 많지만, 인터넷은 커녕 모든 사람이 컴퓨터를 휴대하고 다닌다는 발상 자체가 공상 과학의 영역이었던 70년대에 그런 예견을 한 것으로, 전자 고속도로의 개념을 작품화한 '전자 초고속도로' 라는 작품을 '''1974'''년도에 만들었다.[* 휴대 및 이동이 가능한 컴퓨터 개념으로 만들어진 [[IBM 5100]]의 출시 연도가 1975년이었는데, 그렇게 가볍게 만든 컴퓨터의 무게는 우려 20kg이 넘었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를 74년도 이전에 예견했고, 93년도까지 현재 21세기의 모습을 예언했으며 전부 현실화되었다. 그 [[빌 게이츠]]도 자신의 저서에 비슷한 내용을 저술했지만, 이쪽은 95년도다. [[Apple]]의 존 스컬리가 [[지식 탐색기]]의 개념을 제안하기 시작한 것도 83년이었고 이 때도 아직 시기상조였다고 여겨졌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야 제대로 구현되었다. 그의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예술가들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 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는데 당시 TV는 '바보상자'로 취급하고 TV를 비롯한 미디어 컨텐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대부분이었으며 좋은 미래를 전망하지 않았다.[* 백남준은 기술 발달로 인한 미래 비관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TV가 보편화 되기 시작하면서 바보상자뿐 아니라 빅브라더로 유명한 1984 등의 소설도 유명했는데 그는 이를 빗대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작업을 1984년 1월 1일 방송한다.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전세계 동시 생중계를 한 것이다. 빅브라더는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중매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백남준은 오히려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기반이 되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TV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보다는 전세계인을 이어주는 매체이자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는 선언을 한 셈이다. 2020년 시점에서 TV를 넘어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미디어 매체가 일상 속에 녹아들고 단순 유흥을 넘어뉴스, 정치, 다큐 등등 다양하게 녹아들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된 것을 생각하면 그의 생각은 정확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사실상 [[비디오 아트]] 뿐 아니라 [[미디어 아트]]를 논할 때도 백남준을 빼놓고 말하는 것은 힘들 정도다. 실제로, 미디어 아트 관련 서적에 백남준은 적어도 한 구절씩은 꼭 들어가 있을 정도다.[* 백남준이 빠져 있다면, 그 서적의 전문성을 의심해봐도 무방하다.]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품목에 넣은 것도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다. 해외 예술 경향을 국내에 소개하거나, 휘트니 비엔날레의 경험을 살려서 [[광주비엔날레]] [* [[https://youtu.be/eFsk7J0zBU0|MBC 인기가요에 나와서 광주비엔날레를 홍보하는 영상]]. 존댓말로 시작해 갑자기 반말을 하더니 애교 섞인 존댓말로 돈 좀 많이 써달라는 마무리가 압권이다.]조직에 큰 도움을 주는 등 한국 미술 역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