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두산(밴드) (문단 편집) == 여담 == * 예능에서는 [[유현상]]의 기타실력이 보일 기회가 거의 없지만 [[유현상]] 본인의 기타실력도 수준급이다. 물론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 중의 하나인 [[김도균]]의 테크닉과 비교는 힘들지만 미8군에서 뛰던 유현상의 기타실력은 상당히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라스에 출연해서 약간 보여주었다.] 유현상이 90년대 중반, TBS 교통방송에서 황인용이 진행하던 '밤과 음악사이'에 출연하여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를 들려주었던 적이 있는데 이 때 DJ [[황인용]]은 '기타의 대가'라 유현상을 지칭했었다.[* 황인용은 아나운서 출신이지만, 단순히 음악 틀고 진행만 하는 DJ가 아니다. TBC 출신으로신 군부 방송 통합 이후에 낯선 분야인 KBS 라디오 팝 음악방송 DJ가 되었는데, 팝, 하드록, 클래식 음악과 오디오를 매우 열심히 공부하여 하이파이 오디오와 음악에 대해서 평론가 수준이 된 인물이다. 은퇴 후에도 고전 음악감상실(클래식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당시에도 높은 안목을 지녔었고 괜한 칭찬을 할 사람은 아니다.] * 김도균은 20년이 다되가는 오래된 국산 [[소형차]]인 구형[[현대 엑센트|엑센트]]를 타고다닌다.[* 현재는 [[대우 토스카]]로 차를 바꾼상태.] * [[유현상]]의 아내는 '''13살이나 연하'''인 1980년대 국가대표 [[수영]]선수인 [[최윤희]]다. '''아시아의 인어'''라는 별명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며,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3관왕,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이 결혼은 어찌나 화제였는지 당시에 '''[[유현상]]이 최윤희를 납치해서 강제로 결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언론이 두려워서 절에서 비밀 결혼식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골때리는 문제는 결혼식 관련 영상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인데 당시 비디오 카메라를 친구에게 맡겼더니 이 친구가 다른 절로 갔었다는 이야기를 유현상 본인이 방송에서 했다.] 그도 그럴듯이 최윤희가 현재의 [[김연아]]급이 였다고 하니 팬들의 [[열폭]]이 대단했다고... 지금으로 따지면 '''[[김구라]]X[[김연아]]급'''의 폭탄선언이였다고 한다. 특히 '''방송국 PD들은 백두산의 빽판을 던지거나 부셔버리면서 절대 틀지않겠다!'''고 했을정도 였다고.. [[http://pds18.egloos.com/pds/201009/22/96/cho.jpg|나이가 드셔도 이런 미모이니 그 분들의 열폭이 이해가 간다]] * [[김도균]]은 영국에서 유학 중 이모님의 [[고추장]]에 감명받아서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그 외에 김도균은 외국 여자친구들을 많이 만났다고 한다. 물론 아직 미혼이다. 얼추 밝힌 것만 해도 핀란드, 러시아, 영국, 스칸디나비아등등. * 멤버 [[김창식(백두산)|김창식]]은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부인이 '''당신 밴드 하니까 기타도 칠 줄 알겠지? 나훈아 노래를 쳐줘!''' 라고 요구를 했는데 본인은 기타도 칠줄 모르고 노래도 못해서 맨날 구박만 당한다는 후문을 밝혔다. * 국내의 락/메탈밴드 중에서는 당시에는 유일하게 [[일본]] 최고의 락전문 잡지인 'BURNN!'지에서 '''한국의 초강력 헤비메탈 밴드가 출연했다.''' 라고 크게 기사화가 됐다. 실제로 2집 ''''은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주목을 받았다. * 1986년 발표된 앨범에 실렸던 '애타는 마음'이라는 노래는 1990년 그룹 야차[* 일본 그룹 [[히카루GENJI]]의 컨셉을 모방한 그룹. 뒤에 [[ZAM]]에서 리더를 맡는 [[조진수]]가 팀의 리더였고, '맨발의 청춘'이라는 곡으로 유명한 듀엣 [[벅(한국 가수)|벅]]에서 활동하는 김병수도 이 때의 멤버였다.]의 앨범에 실린 곡으로 더 알려지게 된다. * 유현상은 밴드 탈퇴 후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부른 원조 [[아이돌]] [[이지연(1970)|이지연]]의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새까맣게 나이 차가 나는 이지연과도 스캔들이 났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지연이 한참 전성기를 누리던 중 급거 결혼한다며 [[미국]]으로 떠나버렸고 그 일로 유현상은 엄청난 상심에 빠졌는데, 이후 최윤희와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 [[김종서(가수)|김종서]]도 키워준다고 해놓고 거의 방치를 했다. 훗날 방송에 출연해 김종서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 유현상은 현재 '유현상의 열린음악회'라는 라이브 바를 운영중이다. 무대에서의 모습과 달리 상당히 친절하다고 하다. 또한 정기적으로 팬들과 만남을 가지는듯 * 모 케이블 방송에서 [[씨엔블루]]와 함께 출연했는데... 진행자들이 [[씨엔블루]]와 평행이론으로 닮았다는 개드립을 작렬.(...) 백두산 팬들이 알았다면 혈압이 상승했을 듯. 뭐 이 프로 자체가 컨셉이 그러니 이해해 주자. 사실 [[비틀즈 코드]]는 전혀 닮지 않은 스타를 모셔놓고 온갖 [[개드립]]으로 억지로 평행이론을 만드는게 웃음포인트다. 오히려 씨엔블루와 묶여서 출연했다는 게 이 두 밴드가 전혀 닮지 않았다는 뜻. 실제로 닮았다면 개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도 같이 출연했다.(...) 기타 잼을 잠깐 했는데 김도균에게 [[씨엔블루]] 멤버들이 관광당했다. * 모 프로그램에서 [[노라조]]와 한 무대에 섰는데 카리스마가 예술이었다. 게다가 당시 신곡이라 할 수 있는 반말마[* 2008년에 발표한 곡]도 현장에서 작렬했다.[[http://netv.sbs.co.kr/player/netv_player.jsp?uccid=10000477082|#]][[http://netv.sbs.co.kr/player/netv_player.jsp?uccid=10000451664&boxid=&st=0&cooper=SBS_NETV|#]] * [[부활(밴드)|부활]]의 핵심멤버인 김태원이 65년생, [[이승철]]이 66년생, [[시나위(밴드)|시나위]]의 [[신대철]]이 67년생(빠른 67이다), [[임재범]]이 63년생(62년생이라는 말도 있다.), 양쪽 모두에 걸치는 [[김종서(가수)|김종서]]가 65년생인데 비해 [[유현상]]은 54년생으로 아예 다른 세대라고 할수 있다. 실제로 데뷔 역시 10년 이상[* 미8군 밴드까지 포함하면 거의 15년] 차이가 난다. 가장 어린 멤버였던 [[김도균]] 역시 64년생으로 동시대에 활동했으나 사실 이쪽은 이미 나이트클럽 미군부대등 프로물도 먹을만큼 먹어보고 산전수전 다 겪어본 베테랑이였다. 실제로 시나위에 비해서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더 강력한 사운드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 하지만 워낙에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어울리지 않는 락커 이미지 때문에, 많은 밴드들이 백두산과 한 무대에 서는걸 창피해 했다. [* 1999년 음악평론가 박준흠이 펴낸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이란 책에서 [[작은하늘]]과 [[카리스마]]의 기타리스트 이근형은 유현상과 백두산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백두산은 우리 쪽도 부활쪽도 다 무시했다. 배 쫙내놓고 라이브 하는 것을 보고 뒤에서 "정말 엉터리야"라고 수근거렸다. 메이저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트로트를 했다가 헤비메탈 붐이 일어나니깐 자기 돈 들여 헤비메탈 음반을 제작하고 작곡도 한 것이다. 내가 볼때는 좀 웃기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대단한 사람이다."] * 김도균은 상당히 4차원으로 유명하다. 이미 이태원에서 유명한 연주자였던 김도균은 클럽에서 연주 중 갑자기 아직 자신이 기타와 완전히 친구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 다음 날 '''짐싸들고 산으로 가서 기타수행을 했다.''' 김도균 자신의 말로는 하루가 시작되면 피크를 한 음큼 집어들고 산속에 틀여박혀서 '''그 피크들이 못 쓰게 되고 기타줄이 녹이 슬 때까지''' 하루종일 기타만 연습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잤다고 그렇게 몇 달을 연습하다가 다시 불현듯 이태원에 나타나 공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 유학시절 부터 서양의 락 정신을 받아 들이려면 서양처럼 국물없는 음식만 먹어야 된다고 생각 탓에 국물 있는 음식을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김도균이 워낙 라면을 좋아해서(...) 라면만은 계속 먹는다고. * 최근 과거의 아카이브 영상이 발굴되며 재평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1987년 9월에 열린 [[한강종합개발사업]] 준공 1주년 강변 록 콘서트였던 '한강 젊은 그대여'에서 백두산의 모습을 본 젊은 세대들과 과거의 세대들이 연주력으로만 따지자면 '''레벨이 다른 밴드'''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시나위와 부활은 20대 초반의 영건들의 밴드고, 송골매는 과격한 퍼포먼스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백두산은 좌중을 압도하는 퍼포먼스와[* 백두산은 유독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가 강렬했던 밴드이기도 했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방송에서는 용접기로 철문을 뚫다가 유현상이 철문을 발로 쾅 걷어차고 나오며 무대에 등장한다던가 하는 퍼포먼스를 곧잘 했다. 앞에서 언급한 '한강 젊은 그대여' 콘서트에서도 난데없이 무대 앞 객석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젊은 시절 유현상[* 물론 이 당시에도 유현상은 만 33세였기에 결코 어린 편은 아니였다 .]의 보컬 퍼포먼스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쉼없이 몰아치는 3옥타브의 샤우트, 김도균의 현란한 무대 매너 가히 신들린 듯한 모습을 접한 어린 세대에게는 '''충격'''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중이다. [youtube(TCd8Y4gsA7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