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인엽 (문단 편집) === 6.25 전쟁 === 덕장인 형과는 다른 저돌적인 맹장. 부하들에게 저지른 악행과는 별개로, 전투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개전 당시 [[옹진지구 전투]]에서 독립 제17연대를 지휘했는데, 전차를 몰고 들어온 적군과 3대 1에 가까운 병력 열세 속에서도 잘 싸웠다. 하지만 섬에 가까운 고립지였던 옹진 반도의 특성상 너무 불리했고, 철수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한 이미 철수계획도 있었기에 그에 따라 병력을 운영하였지만 생각보다 적군의 진군속도가 빨랐고, 아군의 해상철수지원은 더뎠다. 어찌저찌 도착한 수송선으로 병사들을 탈출시켰는데, 백인엽은 포를 '''직접''' 조작하며 북한군에 포격을 가하면서 아군의 철수를 원호했다. 마지막 병사들이 탈출할 때, 같이 철수하자는 병사들의 말에 자신은 북한군을 저지할테니 어서 탈출하라며 끝까지 포를 놓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수송선이 떠나고 포를 해체한 뒤 자결하려 했지만 옆에 있던 참모가 말려 살았다고 한다. 다만 이는 전사편찬에 형 백선엽이 참여했다는 국방부 전사편찬연구소 6.25 전쟁사에만 나오는 내용이고, 그냥 병사들이 기절시켜서 탈출시켰다는 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뢰성에 의문이 있다. 이후 [[시흥지구전투사령부]]에 소속되어 지연작전의 기반이 되었다. 낙동강 전투에서의 용맹만큼은 유명했다. 또한 형 백선엽이 쓴 <<실록 지리산>>에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데, 전쟁 이전에 [[여수·순천 10.19 사건|여순사건]] 당시 토벌대로 발령받았으며, 상당히 유능했던 지휘관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여순사건 당시 반군들이 장악한 여수 시내에서 반군들과 시가전을 치러 여수를 탈환한 부대가 백인엽이 이끄는 부대였다. 참고로 그 전에는 토벌군 사령관 [[송호성(군인)|송호성]]이 선두에 나서 여수를 탈환하려 했으나 반란군의 기관총 사격이 그의 지휘 차량에 맞자 그 지휘 차량이 응사하는 도중에 고막이 파열되어 도망가는 추태를 벌였다.] 또한 그가 오랫동안 지휘했던 17연대는 북한군과 잦은 교전으로 실전경험이 풍부해 이름 높은 정예로 평가받았다.[* 부대 최하급자의 계급이 [[하사]] 였다고.] 반면 부정적인 사례도 있는데, [[안강-기계 전투]]의 일부인 비학산 전투 당시 한신 장군과의 일화가 있다. [[한신(국군)|한신]]은 1연대장이었고 백인엽은 수도보병사단장이었다. 1연대가 용전분투하며 치고 올라갈 즈음 포병의 화력지원이 정지되어 기세좋게 올라가던 1연대의 진격이 돈좌되었다. 알고보니 백인엽이 오랫동안 맡아온 바로 그 17연대도 같은 사단에 배속되어 있었는데, 화력지원이 1연대로 쏠려 있자 17연대로 돌려버린 것이었다. 뒤늦게 포병관측소에서 사태의 전모를 파악한 한신 장군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곧장 사단본부로 쳐들어갔다. 당시 사단본부에는 [[이형근]] 장군의 동생인 이상근 대령이 [[참모장]]으로 있었는데, 만류하는 참모장을 던져버리고 사단장실에 박차고 들어가 '''권총을 뽑아들고 매우 강력하게 항의했다.''' 즉, '''연대장(대령)이 사단장실로 쳐들어가 권총을 들고 이판사판 따져든 것이다.''' 그런데 백인엽 사단장은 '''매우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그나마 한신 장군이 던져버렸던 이 참모장과, 한신 장군을 따라온 1연대 작전주임이 간신히 뜯어말려 끝났다고 한다. 결국 이 일로 백인엽은 수도보병사단장에서 해임되었으나, 곧바로 [[준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육군본부 정보국 국장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