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법정(삼국지) (문단 편집) === 죽음 ===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고 1년 후인 220년, 법정은 45세로 요절했다. 법정이 죽었을 때 유비가 슬퍼하며 그를 위해 며칠 동안 눈물을 흘렸고, 시호를 내려 익후(翼侯)[* 임금의 날개]라 했다. 아들 법막이 후사를 이었다. 《조운전》에 따르면 당초 선주(유비) 때에는 오직 법정만이 시호를 받았다. 공신들인 [[관우]], [[장비]], [[조운]] 등이 죽고 수십 년에 지나고 나서야 시호를 받았던 것에 비하면 대접이 남달랐다. 《계한보신찬》에 따르면 익후(법정)는 훌륭한 책략을 사용하고, 세상의 흥함과 쇠함을 예측했다. 주상(유비)에게 몸을 던져 의탁하고, 의견을 서술하고 자문했다. 잠깐 생각하고도 바른 평가를 내리며, 사태를 보고 변화의 징조를 알았다. 유비가 황제에 오른 뒤 장차 동쪽으로 손권을 정벌해 관우의 치욕을 되갚으려 하니 뭇 신하들이 여럿 간언했으나 하나같이 따르지 않았고, [[이릉대전]]에서 크게 패하고 백제(白帝)로 돌아와 머물게 되었다. 이때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법효직이 살아 있었다면 능히 주상(유비)을 제지해 동쪽으로 가시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동쪽으로 가셨다 하더라도 필시 형세가 위태로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