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드로 (문단 편집) == 말년에 대한 전승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tv02.search.naver.net/419px-Domine%2C_quo_vadis.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kgovernmentwatch.files.wordpress.com/simon-peter.jpg|width=100%]]}}} || ||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안니발레 카라치, 1601~1602년,[br]패널에 유채, 77.4 × 56.3 cm, [[런던]] [[영국 국립미술관]](내셔널 갤러리) || 베드로의 십자가형, 벤투라 살림베니, 1604년 || >[[쿠오 바디스|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Quo Vadis, Domine?)]] [[가톨릭]] 교회의 전승과 베드로 행전에 따르면, 베드로는 64년 또는 67년에 사형을 받아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아 순교하게 된다. 이 때 "나는 [[예수|그 분]]과 똑같이 죽을 자격이 없다"면서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요청하여 실제로 그렇게 순교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거꾸로 된 십자가'''는 초대 [[교황]]을 상징하는 또 다른 십자가로도 쓰이는데, 근대부터는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창작자들에 의해 이것이 오히려 [[반그리스도교|안티크리스트]]의 상징으로 쓰이는 경우가 잦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은 십자가, 따라서 그 상징을 뒤집으면 반그리스도교라는 매우 단순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악마]]등이 등장하는 오컬트 영화에서 벽에 걸린 십자가가 뒤집어지는 장면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십자는 베드로의 십자가로서 버젓이 사용된다.] 그 때문에 교황이 [[역십자]]와 함께 찍힌 사진이 떡밥용으로 나돌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역십자, [[쿠오 바디스]] 문서 참고. '''쿠오 바디스'''라는 경구로 유명한 말년의 베드로에 관한 또 다른 일화가 있는데 로마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자 베드로는 신자들의 권유로 탄압을 피해 로마에서 빠져나와 도망가려 했었다. 로마를 벗어나던 중 베드로는 자기와 정반대 방향, 즉 로마로 가는 예수의 환영을 보게 되고 깜짝 놀란 베드로는 예수에게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Quo Vadis, Domine)?"'''라고 묻는다. 이에 [[예수]]가,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Venio Romam iterum crucifigi.)"'''라고 대답하자[* 이 구절을 '''"네가 나의 어린 양들을 버리고 로마를 떠나려고 하니까 (로마군에게 박해당하는 크리스트교 신자들을 위해서) 내가 다시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간다."''' 라는 의미로 의역하기도 한다.] 베드로는 큰 깨달음을 얻고 부끄러움에 통곡한다. 그리고, 목숨에 연연했던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면서 스스로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자수를 하고 [[역십자]]에 매달려 순교하면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훗날 베드로의 유해가 묻힌 성지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졌다. 위 일화는 [[폴란드]]의 소설가인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Adam Aleksander Pius Sienkiewicz, [[1846년]] [[5월 5일]] ~ [[1916년]] [[11월 15일]])가 쓴 소설 《[[쿠오 바디스]](Quo vadis. Powieść z czasów Nerona, 1895)》를 통해 유명해진 것으로, 실제로 성경 본문[* 가톨릭 교회에서 정식 성격으로 인정하는 책들인 정경]에는 등장하지 않고, [[외경]]인 '베드로 행전'의 일화로서 베드로의 로마 선교는 전승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도행전이나 신약 정경 내의 여러 편지들에서 로마 체류 증거가 발견되는 바오로와는 달리 베드로의 로마 순교에 대해서는 일부 그리스도교 종파에서 부정하기도 한다. 일단 신약 정경 내에는 베드로의 후기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사도행전 후반부는 거의 바오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기도 하고, 바오로 서간이나 베드로 서간에서도 '바빌론'이라는 간접적인 비유로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대 교부들은 베드로의 로마 전도를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개신교에서도 이에 대한 동의가 증가하고 있다. >'''역사학적 관점'''에서는, 늦게 잡아도 레오 1세 때에 교회 운영의 수위권에 대한 로마의 주장이 ― 언제나 바로 동방에서 그것을 인정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은 어떻든간에 ― 확립되고 명시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 머물렀고 거기서 순교했다는 것도 최근 가톨릭·비가톨릭을 막론하고 갈수록 많은 사학자들이 시인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바티칸 성당 아래의 베드로의 무덤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가톨릭의 유능한 전문가들도 매우 회의적이다. 그러나 문헌상의 증언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클레멘스의 편지」(1,5-6)를 보면 베드로와 바울로(!)가 네로 시대에 로마에서 순교했을 개연성이 극히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베드로 전서 5,13의 "바빌론"이란 바로 로마가 아닐까?). 이 1세기 말의 로마인의 증언은 또 2세기 초의 소아시아인인 이냐시우스가 「로마에 보낸 편지」(4,3)에서도 확인된다. 95년경부터 분명하고도 이의 없이, 그리고 처음에는 아무런 교회 정책적인 의향도 없이 고수되어 온 이 전통의 신빙성을 부인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라 할 것이다. >---- >-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 이홍근 옮김, 분도출판사, 1994, 180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